카슈끄지 파문에 사우디 경제 안갯속…세계 경제도 역풍 우려

2018-10-25 16:10
  • 글자크기 설정

경제구조개혁안 '비전2030' 흔들…美제재, 사우디 보복 국제유가 '배럴당 400달러' 경고도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사진=EPA·연합뉴스]


자말 카슈끄지 피살 파문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개혁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23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개막한 '미래 투자 이니셔티브'(FII) 콘퍼런스에 유력인사들의 불참이 잇따르는 등 사우디에 대한 국제사회의 시선이 냉담해지면서다. FII는 사우디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경제구조개혁 청사진인 '비전2030'을 대표하는 행사로 '사막의 다보스'라고 불린다.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위기가 세계 경제에도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카슈끄지 파문에 '비전2030' 궤도이탈

무함마드 왕세자는 24일(현지시간) 실시간 중계된 FII 패널토의에서 자신이 카슈끄지 살해 배후라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카슈끄지 살해는) 정당화할 수 없는 극악한 범죄"라며 "결국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우디 출신 반체제 언론인 카슈끄지는 지난 2일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간 뒤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사인은 물론 시신의 행방을 둘러싼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FII에서 직접 카슈끄지 파문을 거론한 건 사우디 정부가 이번 사태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는지 방증한다. 국제사회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사우디 내부의 위기감이 커졌다는 얘기다. 카렌 영 미국기업연구소(AEI) 상임연구원은 최근 워싱턴포스트(WP)에 쓴 글에서 카슈끄지 사태로 사우디의 경제적 미래가 불투명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무함마드 왕세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이 있으며, FII 보이콧 사태에서 보듯 비전2030은 이미 궤도에서 이탈했다고 지적했다.

사우디 경제를 둘러싼 우려는 이미 현지 증시에 반영됐다. 사우디 타다울 주가지수는 지난 1일 이후 8%가량 떨어졌다.

영 연구원은 사우디 경제의 운명이 중동지역은 물론 미국과 세계 경제 향방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미국과 유럽에서 사우디로 흘러든 자금이 상당한 데다, 사우디를 비롯한 페르시아만 주요 산유국이 글로벌 증시와 채권시장 주요 지표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사우디와 쿠웨이트 등 걸프협력회의(GCC) 국가들의 국채 발행액은 2014년 250억 달러에서 올해 1440억 달러로 불어났다. 국제유가 급락세가 이어지면서 국채발행 수요가 늘어난 탓이다.

◆'큰손' 사우디 영향력에 실리콘밸리도 비상

막대한 오일머니를 거머쥔 사우디는 세계적인 투자 큰손이기도 하다. 지난해 현재 사우디가 전 세계에 순투자한 돈은 557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81.5%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미국(35%), 일본(10%), 영국(6%), 프랑스(4%) 등의 순으로 투자비중이 높았다. 특히 대미 투자액의 60% 이상이 뉴욕증권거래소(NYSE) 상장사 등 미국 주식에 집중됐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비전2030을 통해 국부펀드인 공공투자펀드(PIF)를 세계 최대 규모로 키운다는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PIF는 이미 지난해 5월 출범한 세계 최대 기술투자기금인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 450억 달러를 출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무함마드 왕세자가 2016년 이후 미국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한 돈만 110억 달러에 이른다.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 우버와 오피스공유업체 위워크, 기업용메신저업체 슬랙 등이 PIF나 비전펀드를 통해 자금을 조달했다. 

카슈끄지 파문이 커지면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사우디로부터 투자받은 돈을 토해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증시 기술주 대표지수인 나스닥이 급락한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나스닥지수는 이날 4% 넘게 급락하며 조정 국면에 돌입했다. 전 고점 대비 낙폭이 10%를 넘어섰다는 말이다.

◆美제재, 사우디 보복…국제유가 폭등 우려도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와 이에 대한 사우디의 보복 가능성을 둘러싼 우려도 크다. 카슈끄지 사태 초기 사우디를 두둔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날 무함마드 왕세자의 개입 의혹을 제기했고, 미국 정부는 사우디 관리 21명의 비자를 취소했다. 이번 조치는 미국이 금융 부문 등으로 제재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낳았다.

국제 원유시장에서는 무엇보다 사우디의 보복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사우디 정부가 겉으로는 카슈끄지 사태와 관련해 석유를 무기로 삼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1973년 4차 중동전쟁 때 불거진 석유 금수조치(엠바고)가 재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당시 사우디를 비롯한 아랍국가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한 미국 등 서방국가들에 대한 원유 수출을 금지했다.

사우디 국영방송 알아라비아의 투르키 알다크힐 사장은 최근 현지 영자지인 아랍뉴스를 통해 사우디 정부가 미국의 제재 가능성에 대비해 30개 조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중 하나인 원유 감산 조치가 최근 배럴당 80달러(브렌트유 기준) 선인 국제유가를 400달러 이상으로 띄어 올려 세계 경제를 재앙으로 내몰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브렌트유의 역대 최고 가격은 2008년 기록한 배럴당 147.27달러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