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이번 정상회담은 대북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의 변화를 충분히 이끌어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경협사업을 추진하기에 앞서 대북제재 해제를 위한 국제사회의 공감을 다시한번 일으킬 뿐더러 국내에서도 반발 여론에 대한 합리적인 설득 과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1·2차 남북정상회담과 실무협상 등을 통해 철도·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중심으로 경협 논의를 진행해왔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실현하기에 앞서 철도와 도로 연결이 우선순위에 올랐다. 이는 교통과 물류를 수월하게 한 뒤에 경협 사업의 범위를 키워나간다는 복안인 셈이다.
여기에 정부는 산림사업 추진에 대한 기대감도 높여놨다. 접경지역의 병해충 공동방제부터 시작해 묘장 현대화, 임농복합경영, 사방산업 등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낮은 단계의 경협부터 순차적으로 풀어나갈 방침이다. 현재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해제되지 않은 만큼 정부는 ‘차분하면서 질서있는’ 경협 준비에 나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미국의 대북제재를 돌려놓을 수 있는, ‘비핵화’로의 진전을 보이게 될 것을 대비해 정부 안팎에서는 남북경협을 추진하기 위한 조직 구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정부 한 고위급 인사는 “기대하고 있는 결과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나올 경우, 관련부처가 함께 모인 남북경협TF 정도가 우선 꾸려지지 않겠나”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고위 공무원은 “현 상황에서는 조심스럽지만, 회담 결과가 좋다면 TF 이상 규모의 기구도 추진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월께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회 남북관계특별위원회 구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미 2000년 8월 발족한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재가동시키는 것 역시 또 다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꼽힌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장밋빛 희망'을 앞세운 남북경협의 청사진만 바라보기보단 북한제재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분위기와 미국의 정세를 세밀하게 읽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문가들은 낮은 수준의 경협사업이더라도 미국의 제재 위반 해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더구나 미국은 지난 17일(현지시각) 뉴욕 유엔본부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대북 제재를 위반했다고 추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낮은 수준의 경협사업이더라도 미국의 북한제재 위반 판단에 맞대응하기엔 역부족인만큼 섣부른 사업 추진 역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대북제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남북경협을 한다고 했을 때 △제재와 상관없는 사업 △제재에 걸리지만, 유예 받는 사업 △제재 유예는 못받았지만 미국이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 사업이면 가능할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미국의 대북제재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 때문에 무엇하나 안심할 수 있는 경협 사업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더라도 향후 대북제재 해제를 염두에 두고 정부 역시 최적의 시나리오 마련에 매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본격적인 경협은 비핵화 등 핵문제에 대한 방향 전환이 되느냐에 달려있으며 정부 역시 남북경협의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며 “북한 사업을 향한 국내의 발발 기류에 대한 합리적인 설득을 통해 남북경협의 추동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 역시 정부의 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