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취임한 지 20일이 지나자 당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이 대표가 정국의 중심에서 진두지휘하면서 당내는 물론 당·정·청과 관계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대표는 포용적 성장과 공공기관 이전, 부동산 대책,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합법화 등 찬반양론이 뜨거운 의제에 거침없는 메시지를 내며 중요한 이슈를 선점했다. 이 대표의 한 마디가 나올 때마다 정치권 전체가 집중하면서 집권여당인 민주당 존재감도 커지고 있다.
당·정·청을 주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이 대표 의지는 지난달 30일 첫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등 정부와 청와대 수뇌부가 모인 자리였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당이 국민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겠다. 쓴소리라 생각하지 말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3주택자 이상이거나 초고가 주택을 대상으로 종합부동산세 강화 방안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와 청와대는 발언에 호응하며 발 빠르게 움직였고, 보름 만에 종부세 강화안을 포함한 ‘9·13 종합대책’을 내놨다.
지난 4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이 대표는 국정 전반에 대해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20년 집권플랜’에 대한 승부수를 던졌다. 수도권 공공기관 122개 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도록 당정 간에 협의하겠다고 공언했다.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자치분권 이슈를 띄운 이 대표는 지난 7일부터 전남·세종·충남·경기 등에 이어 이날 경남·부산까지 전국 시·도청을 방문해 직접 내년도 예산 챙기기에 나섰다. 이 대표가 개별 시·도와 예산정책협의회를 직접 주재하면서 정치권은 물론 전국이 들썩였다. 앞서 참여정부에서 공공기관 이전으로 지역표를 얻는 효과를 봤던 ‘이해찬의 한 수’라는 분석이다.
이처럼 민주당이 정부보다 먼저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정부가 이를 따라가는 것은 전임 대표 시절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매달 한 번씩 고위 당·정협의회를 갖고 현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한 것에서도 달라진 당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 대표 독주체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표가 원내대표가 주로 관장하는 예산과 정책까지 진두지휘하면서 홍영표 원내대표의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관측이 대표적이다. 청와대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홍 원내대표와 당의 국정주도권을 강조하는 이 대표 사이에 미묘한 긴장 관계가 형성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향후 자칫 당·정·청간 갈등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의식한 홍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예정에 없던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1시간 가까이 현안 관련 발언을 쏟아냈다. 다음 날인 13일에도 라디오 방송 2곳과 공개 인터뷰를 가졌으며, 특수활동비 문제로 취소했던 국회 말진기자단 오찬도 재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물밑에서만 꿈틀대던 당내 파워게임이 시작된 것”이라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더 떨어질 때 이들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