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한정이야말로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7인 중 가장 '지한파'라며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 중국 전문가가 있다.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다.
강 교수는 당시 기자에게 "한정은 중국 경제정책을 집행하는 상무부총리가 될 인물로,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인물, 즉 '키맨'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의 상무부총리는 우리나라 경제부총리와 달리 훨씬 영향력이 크며, 중국은 항상 ‘경제통’으로 검증된 자를 상무부총리에 앉힌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과거 상하이 총영사관 경제담당 영사로 재임하던 1995~1996년,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상업중심지 개발로 헐릴 뻔했던 걸, 당시 임시정부 청사가 소재한 루완구 구장이었던 한정이 제 일처럼 발벗고 나서서 도와줬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자가 만나본 강 교수는 평소 남다른 시각으로 중국을 바라봤다. 그의 신간 ‘중국 통째로 알기’도 저자가 12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포함한 지난 30년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중국의 속살을 색다른 시각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그는 책에서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중국에 대한 잘못된 시각부터 신랄하게 비판한다. 마르크스로 상징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편견,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식 접근, 중국의 진상을 왜곡하는 일본식 접근, 그리고 서구의 이분법적 접근이 그것이다.
책은 우리나라 언론들이 중국의 정치 문제를 무조건 태자당, 상하이방,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등의 파벌로 나눠 권력 다툼 식으로 바라보는 걸 경계한다. 중국 공산당 집단지도체제를 파벌 간 권력투쟁으로 분석하는 건 일본 자민당 내 계파 간 권력투쟁을 자극적으로 보도하는 일본·홍콩 언론매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저자는 북·중 관계를 아직까지 6·25전쟁에서 같이 피를 흘린 '혈맹 관계'라고 보는 시각도 중국 헌 책방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사문(死文)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중국이 한국보다 북한을 가깝게 여긴다는 시각은 냉전시대 사고의 잔상이거나 위험한 착각이라는 것. 최근 들어 북·중 관계가 가까워지고는 있지만, 이는 순전히 중국의 국가이익 때문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책은 이 같은 편견을 깨는 대신 시·공간을 아우르는 통합적 시각, 전 세계와 동북아 속의 중국을 바라보는 거시적 시각, 지역·분야별로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미시적 시각, 그리고 체험을 통한 경험적 시각으로 중국을 꿰뚫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유럽연합(EU)의 두 배나 되는 중국이 분열하지 않은 이유는 천하통일 정신이라고 진단한다. 진(秦)에서부터 한(漢)·수(隋)·당(唐)·송(宋)·원(元)·명(明)·청(清),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관통하는 국시(國是)는 천하통일의 유지와 발전이라는 것. 이는 '분리 독립'이 유럽을 하나로 관통하는 것과 다르다며, 유럽 각국이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레고 세트'라면 중국은 억지로 찢어내지 않고선 분리시킬 수 없는 '누비이불' 같다고 묘사한다.
책은 중국의 힘은 바로 천하통일이라는 구심력에 근거한 포용성의 제도화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21세기 국가통합과 민족통일을 과제로 삼은 우리나라가 중국이 어떻게 통일을 유지·발전시켰는지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세계를 대립적으로 쟁패한다는 뜻이 담긴 ‘G2(Group of 2)’가 아닌, 공동 협력을 의미하는 ‘C2(Cooperation Two)’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보는 시각도 꽤나 신선하다. 책은 우리나라는 미·중 간 이익이 교차하는 공통분모를 찾아 우리나라 국익을 거기에 삼투시키는 창조적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우리나라가 평화의 중심축 역할을 발휘해 대립의 G2 관계를 협력의 한·미·중 'C3' 관계로 만듦으로써 세계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뿐만 아니라 남북통일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
책은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이 자주 범하는 오류도 꼬집는다. 특히 중국은 '관시(關係·인맥)'를 절대시하는 나라라고 여겨 관시 형성에만 주력한 나머지 법규나 정책 파악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며, 이것이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 실패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근 ‘의법치국(依法治國)’을 강조하는 중국에서 사업할 때 중요시해야 하는 우선순위는 1위 법제, 2위 정책, 3위 관시로 관시의 중요성이 예전처럼 절대적이지 않다고 조언한다.
'법학도'답게 저자는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인에게 필요한 중국 법에 대해 꼭 필요한 지식도 전수한다. '설명(說明)' '해독(解讀)' '의견(意見)' '통지(通知)' 등의 하위 법령을 잘 파악하고, 회사법보다 외자기업에 적용되는 '삼자(三資)기업법'을 숙지하고, 중국의 정책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소송보다 중재로 해결하라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지난 30년간 중국을 연구한 전문가답게 중국인의 습성을 설명한 것도 흥미롭다. 책은 31개 성·시·자치구에 사는 중국인이 '베스킨라빈스 31' 아이스크림 맛처럼 언어·민족·풍토·정서·관습·가치관이 모두 제각각이라고 말한다. 이 밖에 중국이 공산주의 국가지만 우리보다 더 철저한 자본주의 국가로, '생의(生意)', 한자 그대로 직역하면 '삶의 뜻'이라는 단어가 중국에서 비즈니스나 장사를 뜻하며, 중국인이 추구하는 삶이란 한 마디로 장사를 잘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고 바라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