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30일. 학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박초롱초롱빛나리양(당시 8세)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처음 보는 이를 따라간 박양은 이날 귀가하지 않았다. 대신 낯선 이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박양의 집에 걸려왔다. 유괴범은 박양의 몸값으로 2000만원을 요구하더니 금방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오후 8시 30분,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범인이 "서울 중구 명동역 인근에서 만나자"고 전하는 사이 경찰은 급히 발신지를 추적했다. 명동에 위치한 한 커피숍이었다. 7분 만에 경찰은 현장을 급습했다. 커피숍에는 손님과 종업원 등 총 13명이 있었다.
실마리를 찾지 못한 경찰은 결국 9월 3일 공개수사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실종된 어린이의 특이한 이름은 곧바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매일 제보가 들어왔지만 큰 소득은 없었다. 그 와중에 걸려온 한 중년 남성의 전화는 체포의 결정적인 단서였다. 자신의 딸이 수상하다는 것이다.
경찰은 12일 박양을 유괴한 혐의로 전모씨(당시 28세)를 체포했다. 바로 경찰이 커피숍에서 마주쳤던 '만삭의 임신부'였다. 모두의 간절한 소망과 달리, 2시간 뒤 박양은 동작구 사당동의 한 지하창고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박양은 실종 당일 살해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전씨는 공범의 존재를 주장했다. 자신은 성폭행의 피해자이며 진범들이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인에게 보내는 이러한 내용의 편지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한때 문예창작과에 다녔던 전씨 상상력의 산물이었을 뿐이다. 전씨는 평소에도 일상적으로 주변에 거짓말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에게 이렇다 할 수입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헤픈 씀씀이 때문에 생긴 수천만원의 부채를 해결하려는 게 전씨의 범행 목적이라고 경찰은 판단했다. 재판과정에서 한 정신과 전문의는 "연극성 인격장애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내놓기도 했다. 다음해 11월 대법원은 전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전씨는 현재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