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펠러는 1899년 미국 뉴저지에 지주회사 스탠더드오일을 세웠다. 당시 뉴저지에서 만든 회사는 다른 지역에도 자회사를 둘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법원은 1911년 스탠더드오일을 해체시켰다. 경제에 미치는 폐해가 커져서다. 록펠러는 경쟁기업을 망하게 하거나 사들이는 식으로 시장을 독점했다. 그래서 문어발식 경영을 비판하는 글에는 록펠러와 지주회사가 자주 나온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라는 기자는 록펠러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타벨은 록펠러를 끈질기게 추적했고, 법원에서 기업해체 명령을 이끌어냈다. 스티브 와인버그가 펴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라는 전기에도 나오는 얘기다. 와인버그는 타벨과 록펠러를 절대적인 선과 악으로 나누지는 않는다. 록펠러재단도 영향을 줬다고 한다. 록펠러 가문은 재단을 바탕으로 록히드마틴이나 엑슨모빌, 몬산토처럼 거대한 다국적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지금껏 이런 회사가 국부를 크게 불려줬다는 것은 사실이겠고, 그래서 지주회사에서 재단으로 이름만 바꿔 살아남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주회사가 이제야 문제다. 그런데 한 세기 전 미국에 비하면 정반대인 이유로 그렇다. 모든 기업집단 지배회사가 지주회사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순환출자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지주회사가 순환출자보다는 낫다는, 적어도 차악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물론 순환출자는 외환위기 당시 줄도산을 일으킨 주범으로 꼽혀왔다. 지배구조 왜곡도 마찬가지로 순환출자에서 원인을 찾는다. 턱없이 적은 지분으로 거대 기업집단을 거느린다는 것이다.
그 사이 어떤 일이 있었을까. LG그룹은 4대 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이른 2003년 지주회사를 도입했다. 반면 삼성·현대차그룹은 지금도 순환출자를 유지하고 있다. SK그룹은 그렇지 않지만, 근래에야 지주회사 전환을 마무리했다. 물론 원인을 지주회사 하나에서 찾을 수는 없다. 2000년을 전후로 벌어진 계열분리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투자가 아닌 지주회사 자체에 큰돈을 쓴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계열분리 규모는 LG그룹 못지않게 현대차그룹도 컸다.
구체적인 숫자까지 보자. 삼성·현대차그룹 자산총계는 2000~2017년 사이에 제각기 440%와 650%씩 커졌고, SK그룹도 290% 늘었다. LG그룹 증가율만 두 자릿수인 80%에 그쳤다. 수익성도 비슷했다. 이 기간 순이익이 SK·현대차·삼성·LG그룹 순으로 많이 늘었다. 적어도 4대 기업집단만 보면 지주회사를 택하지 않은 쪽이 자본효율성에서 앞서고 있다.
물론 이런 숫자보다 중요해진 가치가 많다. 과거에는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 "공산주의 사회에서 쓰는 말인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제는 여야가 나란히 경제민주화를 선거공약에 집어넣는다. 이참에 지주회사도 손봐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더 늘려야 하고, 손자회사는 못 세우게 하라는 것이다. 순환출자가 존재하지 않는 기업집단까지 난처해졌다. 대표적인 곳이 미래에셋그룹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나 미래에셋캐피탈을 지주회사로 바꾸라는 요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갈수록 서두를 수 있다. 임기 전반을 지나면 힘이 빠지게 마련이니 조급해질 것이다. 청와대(장하성 정책실장)와 기획재정부(김동연 부총리)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김상조 위원장)와 금융위원회(최종구 위원장)가 서로 손발을 못 맞춘다고도 한다. 물론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르겠고, 경제팀을 괜찮은 조합으로 짰다는 생각에도 변함이 없다. 다만 머지않은 평가에서 성장성이나 수익성을 빼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주회사가 보여준 숫자에는 들여다봐야 할 대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