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업이 독일 기술기업을 인수하려던 시도가 결국 무산됐다. 중국의 기술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독일 정부가 인수를 승인하지 않기로 하면서다. 미국과 유럽은 중국 투자에 대한 경계를 점차 강화하는 모습이다. 무서운 속도로 세계 기업들을 집어삼키던 차이나머니의 ‘식욕’에도 제동이 걸리게 됐다.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독일 기계장비·부품업체 라이펠트 메탈 스피닝(Leifeld Metal Spinning AG) 인수를 추진하던 중국 기업 옌타이 타이하이(Yantai Taihai Group)는 1일(현지시간) 인수 의사를 철회했다.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알렌에 본사를 둔 라이펠트는 자동차, 항공우주, 원자력 산업에 쓰이는 고강도 철강 제품을 생산하는 독일의 첨단 기술기업이다.
독일 싱크탱크 MERICS는 블룸버그 통신에 “라이펠트는 최상의 기술제품을 제작한다”면서 “독일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첨단산업 육성책인 ‘중국제조 2025’가 독일에 미칠 위협을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이 2025년까지 정보기술(IT), 우주항공, 전기차, 생명공학 등 10개 부문에서 세계 선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첨단기술을 집중 육성하는 정책을 말한다.
최근 몇 년 사이 독일 정부는 외국인 투자 규정을 강화해 중국의 대독 투자를 견제하고 있다. 중국이 독일의 핵심 인프라 및 기술 기업 인수를 통해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고 핵심 기술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특히 2016년 독일 굴지의 산업로봇 기업인 쿠카(Kuka)가 45억 달러(약 5조원)에 중국 대형 가전업체 미데아(Midea)에 팔려나간 뒤 차이나머니에 대한 경계심은 더 커졌다.
결국 지난해 독일은 유럽연합(EU) 역외 기업들이 독일 기업 지분을 25% 이상 인수하려 할 때 정부가 공공질서나 안보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거래를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차이나머니의 ‘먹성’을 경제하는 것이 비단 독일만은 아니다. 중국은 정부 차원에서 해외투자 허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지만 미국와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중국 투자자들에게 빗장을 채우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전했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고율 관세 부과를 통해 ‘중국제조 2025’를 정조준했다. 지난달 6일 트럼프 정부는 34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관세를 부과하면서 신소재, 로봇공학, 산업기계 등 '중국제조 2025’로 육성되는 제품을 집중적으로 겨냥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를 견제하고 미국의 핵심·첨단 기술 등의 유출을 차단하기 위해 대미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법에 조만간 서명할 예정이다. 지난달 이 법은 미국 의회에서 초당적인 합의 하에 통과됐다.
3500억 위안(약 57조원)을 운용하는 사모펀드인 중국구조개혁펀드(CSRF)의 토니 동 상무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미국에 투자하려던 계획이 무산될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차이나머니 견제에 중국의 대미 투자도 급감하고 있다. 컨설팅업체 로듐그룹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꾸준히 증가하던 중국의 대미 투자는 올해 상반기 7년래 최저 수준까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과 캐나다에 대한 투자는 전년대비 92% 급감한 20억 달러에 그쳤다.
대미 투자가 막힌 중국은 유럽으로 방향을 돌렸지만 유럽의 반응도 따뜻하진 않다. 홍콩 소재 M&A 한 은행가는 “미국과의 거래가 무척 힘든데 유럽도 비슷하게 규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영국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자산을 외국인 투자가 사들일 때 이를 막는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 정책과 관련한 120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중국은 한 번밖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영국 정부 관계자는 중국인 투자에 초점을 맞춘 정책임을 확인했다고 F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