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원작 애니메이션답지도, 김지운스럽지도 않은 '인랑'

영화 '인랑' 스틸컷[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2029년의 한국. 남북한 정부가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하고 강대국들은 한국의 급 경제성장을 두려워해 경제 제재를 가한다.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고 민생이 악화되는 등 지옥 같은 시간이 이어지자 통일에 반대하는 반정부 무장테러단체 ‘섹트’까지 등장하게 된다. 정부는 ‘섹트’를 진압하기 위해 설립된 대통령 직속 새로운 경찰조직 ‘특기대’를 내세워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한다. ‘특기대’가 점점 더 몸을 불리자 정보기간 ‘공안부’는 이를 경계, ‘특기대’를 말살할 음모를 꾸민다. 권력기관 간에 피비린내 나는 암투 사이, 특기내 내 비밀조직 ‘인랑’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소문이 떠돌게 된다.

영화 ‘인랑’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다. 세계 2차 대전 패전 후 비정상적으로 급진적 고도 경제 성장을 위해 경제 재편성을 이루고 비정상적으로 격화된 사회운동과 그에 대응하는 경찰의 진압이 만연한 196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무장 게릴라에 대응해 사살도 불사하는 경찰 진압 기관인 특기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사회와 개인에 대한 메시지, 비관적 세계관에 걸맞는 아름답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시적인 표현력으로 많은 마니아를 양산해낸 명작이다.

‘장르의 마술사’라 불리는 김지운 감독은 ‘인랑’의 실사화를 결정, 원작의 오마주와 새로운 설정들을 엮어 독특한 결의 작품을 완성해냈다.

‘인랑’의 실사화를 두고 많은 우려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수많은 마니아층을 가진 원작을 영화화하는 것도 부담인데다가 원작이 가진 메시지, 분위기 등이 상업영화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작품 배경 및 설정 또한 지극히 일본적인 탓에 한국적인 요소들로 치환하는 것에도 많은 고민이 따랐을 터. 이에 김 감독은 2029년 남북한 정부가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한 뒤 혼란한 한국을 배경으로 설정, 묵시록적 SF인 원작의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한국적으로 확장된 세계관을 더했다.

영화 '인랑' 스틸컷[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영화의 비주얼은 원작 팬들을 만족시킬 만한 수준. 웅장하고 장대한 지하수도며 ‘인랑’의 상징인 강화복 입은 사내와 붉은 눈, 원작에 등장하는 MG42 기관총과 AK소총, M4 카빈 소총, M203 유탄 발사기, PGF3 로켓포 등 44점의 총기 역시 완벽하게 구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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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완벽한 비주얼과는 달리 서사나 전개 방식이 다소 아쉽다. 김 감독은 원작의 큰 줄기를 차용하되 전개 방식을 달리 했고 다양한 인물과 설정을 추가했다.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풀어가려한 점이 눈에 띄나 다소 과잉되었다는 인상이다. 거기다 빠른 속도로 시선을 둘 데 없이 다양하고 많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도 관객들이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많은 이들에게 아쉬운 점으로 언급되고 있는 임중경(강동원 분)과 이윤희(한효주 분)의 로맨스는 원작에서도 다루고 있는 설정. 그러나 두 사람의 멜로 라인이 지적받는 것은 온도 유지 및 표현 실패로 보인다. 극 중 인물들의 과잉된 감정 표현은 감정표현을 절제하고 건조하게 인물을 그려낸 원작이나 김지운 감독의 전작과도 다르며 멜로 라인을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원작과 다른 결말 역시 영화의 호오(好惡)를 가를만한 요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원작의 팬이라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원작 애니메이션이 가진 주제의식이나 영화를 관통하는 메시지가 비극적 결말로 하여금 깊은 여운을 주는 것과 반해 영화는 또 다른 결말로서 원작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원작을 영화화한다고 하여 같은 노선을 취할 필요는 없으나 원작의 결말이 영화의 주제 및 메시지를 폭발시키는 엔딩이었으므로 김 감독의 선택이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원작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서사가 훌륭한 비주얼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은 변함없다. “늑대의 탈을 쓴 인간이 아닌, 인간의 탈을 쓴 늑대”라 불리는 임중경이 혼돈의 상황 속 죄의식에 시달리며 이윤희를 통해 성장, 무리에서 벗어나 개인으로 돌아가게 되는 서사가 차근차근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못했다. 사족처럼 느껴지는 많은 인물과 이야기보다 임중경과 이윤희의 드라마에 힘을 쏟았다면 김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조금 더 변형 없이 관객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중심축인 임중경 역의 강동원은 ‘인랑’의 상징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해냈다. 비주얼적인 면모나 표현 역시 기대 이상이다. “원작과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고자 했다”는 강동원의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적인 톤이 돋보인다. 특기대 훈련소장 장진태 역의 정우성과 공안부 차장 한상우 역의 김무열 역시 마찬가지. 여느 작품보다 돋보이는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극 중 인물을 뚝심 있게 밀어 붙였다는 평. 하지만 이윤희 역의 한효주는 원작보다 많은 임무를 부여받은 만큼 혼란스러워 보인다. 그간 안정적인 연기력을 보여 온 한효주인만큼 고뇌와 갈등을 거듭하는 이윤희를 표현함에 아쉬움이 남는다. 25일 개봉이며 러닝타임은 138분 관람등급은 15세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