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 모두가 눈 감고, 귀 닫고, 입을 막았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례가 공개되자 세간은 발칵 뒤집어졌고 함께 공분하거나 혐오하는 등 각각의 반응이 쏟아진다.
부산 여성 경제인연합회는 부산 지역에 ‘정신대 신고 전화’를 개설, 여행사 사장인 문정숙(김희애 분)이 이를 맡아 피해자들과 직접 만난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분투하던 문정숙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의지했던 가사도우미 배정길(김해숙 분)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을 돕기 위해 사비를 털어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한다.
영화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오직 본인들만의 노력으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선 할머니들과 그들을 위해 함께 싸웠던 사람들의 뜨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을 만큼 유의미한 결과를 이뤄냈음에도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관부(關釜)재판’을 소재로 치열했던 재판 과정을 담백하게 표현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같은 소재를 영화화한 작품들과 군데군데 궤를 달리해 ‘과거’가 아닌 ‘현재’에 집중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위안부 소재 영화들의 문제점이라고 언급되었던 선정적·폭력적 묘사를 줄이고 법정 드라마로서 말(言)로 하여금 묵직한 승부수를 던진다는 것이 영화의 강점이자 차별성. 플래시백(과거의 회상을 나타내는 장면 또는 그 기법)을 통해 과거 피해 사실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거나 고통을 목격하게 만드는 일을 경계, 6년의 재판 과정 속 위안부 피해자 개개인의 인권과 고통에 대해 짚어내며 그들에게 조력했던 인물들의 진심 어린 투쟁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과정을 통해 영화는 성별과 국적을 넘는 다양한 ‘연대’와 갈래를 보여주기도 한다.
유사 가족의 형태를 한 배정길과 문정숙, 그의 딸 혜수(이설 분)로 하여금 ‘위안부’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시키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을 건드리는 것 역시 민규동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 할머니, 어머니, 딸의 세대까지 역사는 계속되고 있고, 해결되지 않았으며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또 피해자 여성이 겪는 일련의 사건은 오늘날 여성들이 겪는 문제들과도 다르지 않다는 게 세대별 공감 포인트기도 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례를 넘어 한 여성이 겪는 아픔과 고통, 편견에 대한 이야기로 오늘날 여성 인권 문제와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 흥미롭다.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는 그야말로 신의 한 수. 원고 단장 문정숙 역의 김희애를 필두로 배정길 역의 김해숙, 박순녀 역의 예수정, 서귀순 역의 문숙, 이옥주 역의 이용녀, 재일교포 변호사 이상일 역의 김준한과 원고단의 든든한 지원군 신사장 역의 김선영에 이르기까지. 연기 결점 없는 배우들의 연기 호흡과 앙상블로 영화는 더욱 단단하고 견고해진다. 27일 개봉이며 러닝타임은 121분, 관람등급은 12세 관람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