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과 병원의 무덤으로 불리는 중국 의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투자회사가 있다.
비즈니스 모델이 독특하다.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 대신 지방 도시인 허난성 정저우에 터를 잡고 현지의 대형 국유기업을 합작 파트너로 골랐다.
또 중국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프리미엄 건강검진 서비스를 앞세워 일단 시장에 진입한 뒤 추가로 성형외과 개업을 승인받아 연착륙에 성공했다.
중국의 헬스케어 시장은 오는 2020년까지 8조 위안(약 1333조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꼽히지만 만만히 보고 덤볐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이 회사의 경영 전략 속에서 현지 시장 공략법을 찾아보자.
◆블루오션 찾아 영업력으로 승부해야
지난 2016년 7월 정저우 중심상업지구(CBD)에서 문을 연 중평한일건강검진센터는 한·중 합작으로 설립됐다.
지난해 고객 1만명을 유치해 손익 분기점을 넘겼고, 올해는 2만5000명 이상을 목표로 잡았다.
삼성의료원·고려대학교병원 등과 제휴를 맺고 한국의 최고급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 주효했다.
내시경 시술과 신체연령 진단, DNA 검사 등을 정저우에 처음 도입했다. 평균 진단 비용은 1350위안(약 22만5000원)으로 다른 검진센터보다 비싸지만 고객이 몰린다. 최고 800만원짜리 검진 서비스도 있다.
허난성 인구는 1억명, 최대 도시인 정저우 인구는 1100만명이다. 지난해 정저우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1만4000달러 수준으로 전년 대비 6.5% 증가했다.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자연스럽게 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와 달리 고급 검진 서비스를 접하기 어렵다보니 수요가 공급을 큰 폭으로 초과한다.
비교 우위인 품질을 앞세워 경쟁이 덜한 지역을 석권한다는 전략이 먹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기업과 금융회사가 밀집한 중심상업지구를 입지로 정한 것도 영업에 도움이 되고 있다.
35명의 인력으로 법인 영업에 주력한 중평한일은 헝다그룹과 건설·교통은행, 핑안재산보험, 타이핑생명보험 등 주요 기업을 고객으로 유치하는 성과를 거뒀다.
지난 20일 검진센터 입구의 중평한일 간판 옆에 중평JK라는 간판이 새로 걸렸다. 한국 JK성형외과와 합작 설립한 중평JK성형외과가 보건 당국의 승인을 받고 공식 출범했다.
건강검진에 이어 성형·미용 등 서비스까지 제공할 수 있는 플랫폼이 완성된 것이다. 1500㎡ 면적에 전문 수술실, 피부 관리실, 성형 치과, 피부과, 집중 치료실, 스파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저우 내 성형외과는 185개, 연 매출 6000만 위안(약 100억원) 이상인 병원은 10곳에 불과하다. 인구가 비슷한 서울의 경우 2000개의 성형외과가 영업 중이다.
유정원 중평JK 원장은 "한국은 서울 강남구에만 400여개의 성형외과가 몰려 있어 경쟁이 치열하고 중국은 성형 기술을 어깨 너머로 배울 정도로 전문성이 결여돼 있다"며 "정저우의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성형·미용 산업은 매년 40% 이상씩 성장해 올해 1260억 위안(약 2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에는 2000억 위안(약 33조3200억원)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사업의 성패, 합작 파트너에 달려
중평한일은 한국계 투자회사 BIC와 허난성 최대 국유기업인 중궈핑메이선마(中國平煤神馬)그룹의 자회사 중핑젠캉(中平健康)이 각각 40%와 4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15%는 김광복 BIC 회장이 투자를 유치한 우호 지분이다.
김 회장이 중평한일의 최고경영자(CEO)로 경영을 총괄하고 중핑젠캉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와 감사를 파견하는 방식이다.
중핑그룹은 석탄 채굴과 석유화학 제품 생산 등이 주력 사업이지만 최근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의료 분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허난성에서만 53개 병원을 운영 중이다.
이들 병원의 환자는 중평한일의 잠재적 고객군이다. 검진센터와 성형외과 내 일부 장비를 중핑그룹 산하 병원에서 무상으로 대여해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중국 특유의 '관시(關係)' 문화 때문에라도 믿을 만한 합작 파트너가 꼭 필요하다. 중평한일은 단기간 내에 허난성과 정저우시 의료보험 적용 병원으로 선정됐다.
김 회장은 "중국은 성(省)별·도시별로 의료보험 체계가 상이해 병원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모두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현지 최대 국유기업이 합작 파트너라는 게 당국의 심사 과정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한국 기업과 병원들이 합작 파트너 없이 단독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SK가 지난 2004년 베이징에 SK아이캉병원을 설립했다가 5년 만인 2009년 철수한 게 대표적이다. 수익성 악화가 가장 큰 이유이지만 중국 당국의 압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유 원장은 "한국 자본으로 중국에 병원을 설립해도 관시가 없으니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경쟁하던 중국 병원이 당국에 '과대 광고' 등을 이유로 신고하면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쫓겨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 측 파트너가 계약 내용대로 이행하지 않는 경우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중국 시장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진출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의료 시장은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매력을 갖고 있다.
연세의료원은 중국 신화진(新華錦)그룹과 손잡고 산둥성 칭다오에 칭다오세브란스병원을 짓기로 했다. 2021년 개원 목표로, 총 3000억원이 투입된다.
서울대병원과 고려대병원도 중국 측 파트너를 구해 합작을 추진 중이다. 중국 진출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이 될 사례가 나오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