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는 미국 최대 적"...트럼프 작정 발언 이유는?

2018-07-1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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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EU, 1953년 이후 무역·안보·외교 등 협력 관계 이어와

2002년 미국의 철강 관세 부과 이후 양측 관계 흔들

보복 관세, 나토 분담금, 이란 제재 등 불협화음 이어져

푸틴 회동 앞두고 '외교 전환점' 염두에 뒀다는 평가도

[사진=연합/AP]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유럽연합(EU)을 '적(敵)'으로 규정했다. '무역 부문'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미·EU 간 동맹 관계가 올해로 65주년을 맞는 점에 비하면 꽤 도발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수십년간의 동맹 관계를 위협하는 과격 발언이 나오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 얽히고설킨 통상 관계의 덫...IT 세금 폭탄부터 자동차 관세까지 
미국과 EU 간 동맹 관계는 지난 1953년 미국 대사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방문하면서 공식 시작됐다. ECSC는 EU의 전신이다. 미·EU 동맹은 양측 간 협력을 통해 무역과 안보, 외교 등 공동 가치를 실현하는 데서 출발했다. EU 집행위원회(EC)에 따르면 무역 면에서 2012년 기준 양측 경제는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발전했다.

양측이 삐걱대기 시작한 것은 EU가 단독 연합체로서 경제력이 대폭 성장하면서부터다. 지난 2002년 미국 정부는 자국 철강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외국산 철강 제품에 관세를 부과했다가 세계무역기구(WTO)의 규정 위반 판결이 나오자 이듬해인 2003년 12월 관세 정책을 철회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2007년에는 양측 간 경제 협력을 추진하는 범대서양 경제위원회(TEC)가 출범했다. 2013년에는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체결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관세와 규제를 낮추고 양측 기업이 서로의 시장에 대한 상호 진입 장벽을 낮추자는 게 골자였다. 그러나 EU 회원국의 일괄적인 동의가 어려운 상태여서 수년간 표류하고 있다. 

분열되고 있는 양측 관계에 기름을 부은 것은 EC의 '미국 기업 때리기'다. EC는 지난 2016년 정보기술(IT) 공룡 기업인 애플 측에 유럽의 세금 제도를 악용했다면서 130억 유로(약 17조1655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당시 외신들은 애플을 겨냥한 조치지만 사실상 미국 기업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의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비교적 세금 부담이 낮은 유럽에 본사를 이전한 맥도날드, 구글 등 미국 기업에 철퇴를 내렸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자동차 관세 부과를 두고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시작은 철강·알루미늄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월 1일 유럽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각각 25%, 10%의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그러자 EC는 닷새 만에 미국산 오렌지, 청바지, 오토바이 등에 28억 유로(3조6000억원 상당)의 보복 관세로 맞섰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산 자동차에 대해 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면서 무역 갈등 우려를 높였다. 

◆ 나토 분담금, 이란 제재 등 잇따른 불협화음
 
미국과 EU는 경제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 안보, 북한·이란 제재 등에서도 협력을 해왔다. 지난 2009년에는 EU-미국 에너지 협의회를 체결하고 에너지 안보와 기후 변화, 재생 가능 에너지, 원자력 안전 등에 대한 협력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도 공동으로 단행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지난 5월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일방적으로 탈퇴, 대(對)이란 제재 부활을 예고하면서 외교·안보 부문에서도 분열하는 모양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의 15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금융, 원유 등 에너지, 자동차 등 대이란 경제 제재를 면제해 달라는 EU의 요구를 거절한 상태다.

지난 12일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이 국방비 지출을 GDP 기준 2% 이상으로 늘리지 않으면 탈퇴할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러시아와 독일 간 천연가스 수송 프로젝트인 '노드 스트림 2' 계약을 비난하는가 하면 영국 측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에서 EU에 소송을 제기하라고 제안하면서 EU의 불만을 키웠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15일 미국 CBS와의 인터뷰를 통해 "EU 국가를 좋아한다"면서도 "우리에겐 많은 적이 있지만 통상 관점에서 그들(EU)이 우리를 이용하는 면을 보면 미국의 적이다"라고 말한 데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일단 오랜 통상 갈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지만 16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예정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 전환점'으로 삼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현재 EU는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을 물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단행하고 있다. EU와의 관계에서 좋은 위치를 점하기 위해 푸틴 대통령과의 회담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트위터를 통해 "미국과 EU는 가장 친한 친구"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적 발언은)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것"이라며 긴급 진화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도 "적이라는 표현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경쟁적'이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은 "오랜 동맹을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잇따른 과격 표현은 유럽 민주국가들에 대한 뚜렷한 태도 변화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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