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기술 굴기(우뚝 섬)'에 급제동을 걸 태세다.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며 고조된 미·중 무역갈등의 전장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 주 안에 자국 기술기업에 대한 중국의 투자와 미국 기술기업의 대중 수출 등을 제한하는 내용의 정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중국 기업의 투자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미국 재무부가 마련 중이다. 중국 지분이 25% 이상인 기업은 '산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술'과 관련된 미국 기업을 인수하지 못하게 하는 식이다. 미국 기술기업이 중국 지분 25% 이상인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들은 중국 지분 상한선이 이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고 귀띔했다. 제재 강도가 더 세지는 셈이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상무부는 미국의 대중 기술 수출에 제동을 걸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최근 "수조 달러의 자금이 우리의 최고 기술을 노리고 있다"며 "이에 대한 방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나바로 국장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표적인 대중 강경파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에도 국가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일방적인 조치를 정당화할 전망이다. 미국은 수입산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폭탄 관세 조치 때도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었다. 미국이 1962년 제정한 '통상확대법 232조'는 국가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한 수입 제한을 정당화한다.
소식통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의 대미 투자를 제한하기 위해 1977년 제정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이용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IEEPA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은 '이례적인 위협'에 맞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다. 비상사태 때는 투자 거래를 막거나 자산을 압수할 수 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뒤 이 법을 발동해 테러 관련국에 대한 제재를 취한 적이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는 국가안보 위협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라고 비판한다. 데릭 시저스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가 모든 걸 국가안보 문제라고 선언하면,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며 "이는 집행권의 남용"이라고 꼬집었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이날 WSJ에 "대통령이 미국의 기술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며 "수출통제의 잠재적 변화를 비롯해 미국의 기술을 더 잘 보호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방법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등을 통해 기술 부문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해왔다. 국가안보 위협을 이유로 자국 반도체회사 퀄컴에 대한 브로드컴의 적대적 인수 시도를 막은 게 대표적이다. 중국 통신장비제조업체 ZTE는 미국의 대(對)이란·북한 제재를 위반한 혐의로 미국 기업과의 거래 금지 등 강도 높은 제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