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내놓은 중국 통신장비업체 중싱(中興·ZTE) 제재 카드에 큰 타격을 받은 중국이 한국과 미국 반도체 업체를 대상으로 반독점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중국 당국이 D램의 주요 생산업체인 미국의 마이크론과 한국의 삼성, SK하이닉스의 가격 담합 의혹을 이유로 지난달 조사에 나섰다고 홍콩 명보 등 중화권 언론이 3일 보도했다. 미·중 무역 3차 협상을 앞둔 시점에서 진행된 조사로 미국의 압박에 대한 맞불 작전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미·중 갈등 속 한국 기업도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 관심이 집중됐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지난달 24일 미국의 마이크론 측과 사전 면담을 통해 관련 문제점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최근 수 분기 동안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급등한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마이크론이 시장에서 압도적인 비교우위를 남용해 공정 경쟁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같은 달 31일에는 한국 삼성과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사무실을 급습해 조사했다. 이는 중국 일부 기업의 신고에 따른 것으로, 역시 가격 담합 등에 따른 불공정 무역 행위 가능성이 이유다.
마이크론, 삼성 등이 중국 반독점법을 위배하는 가격 담합행위를 벌였다는 사실이 인정되면 연 매출액의 1~10%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명보는 마이크론과 삼성, SK하이닉스 3사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95.4%에 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만 중국시보(中國時報)도 2016년에서 올해까지 세계 D램 가격이 폭등했으며 이에 따라 3사가 담합해 가격을 올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이후 새롭게 출범한 반독점국의 첫 조사대상이 한국과 미국의 반도체 거물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중국 반독점국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가격조사국, 상무부 반독점국, 공상총국의 반독점국을 통합해 만들어졌다.
이와 함께 미국의 압박이 이어지고 2~4일 3차 무역협상을 의식해 중국이 내놓은 카드일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중국시보는 업계 전문가 발언을 인용, "이번 조사는 미·중 3차 무역협상과 ZTE 관련 미국의 압박이 큰 민감한 시기에 이뤄졌다"면서 "미국의 지속적인 압박에 중국이 고의적으로 마이크론 등을 표적으로 삼아 미국에 맞불을 놓을 능력이 있음을 알린 것일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이 ZTE를 강력하게 제재하면서 중국 내 '핵심기술 혁신'을 통한 자국산 반도체 개발과 대체를 향한 의지가 커졌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에 따라 이번 조사가 시장 영향력이 큰 업체를 견제해 자국 기업에 기회를 더 주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달 중국 정부는 '2019년 중앙 국가기관 IT 제품 조달계획 공고'에서 국산 반도체 서버 구매를 사상 처음으로 명시하기도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은 지난달 열린 중국공정원 등 원사 회의에서도 "핵심기술 개발과 혁신으로 세계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해야 한다"면서 자체 기술력 확보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