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물려받은 뒤 초반에는 성과를 많이 냈지만, 자만심에 빠지면서 현실적·경영적 판단을 정확히 하지 못했습니다. 이는 곧 실패로 이어졌습니다.”
정금종 HK 컨버전스 대표는 악기 '기타' 수출로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며 잘 나가던 사업가에서 단돈 몇천 원만 남은 실패한 경영인이 된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다. 재기에 성공한 정 대표는 이번엔 창업 도우미로서 창업 희망자들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정 대표는 부친이 1980년에 설립한 한국악기를 2002년에 물려 받았다. 당시 그의 나이는 29세였다. 정 대표는 2005년에 독자 브랜드 ‘크라켄’을 출시했다. 크라켄은 개별 맞춤형 고급 일렉기타다. 한국악기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쌓은 기술력이 밑바탕이 됐다. 그는 OEM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2005년 미국을 시작으로 57개국에 수출 판로를 열었다. 수출이 늘자 매출은 1000억원대 까지 뛰었다.
정 대표는 새벽 4시만 되면 오늘 할 일에 설레어 눈이 떠졌다고 했다. 그는 "내 생애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고, 1만명이 넘는 고객을 직접 만나 기타제작 상담을 시작했고, 어떤 고객과는 150통 이상 메일을 주고 받기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2009년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한국악기는 5년을 버티지 못해 결국 2014년 폐업했다.
이후 정 대표는 실패한 경영인들을 돕는 창업캠프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장소는 경북 죽도였다. 죽도는 울릉도에서 약 2㎞ 떨어져 있는 외딴섬이다.
섬에 도착했을 당시 그는 “호주머니에 남아 있던 돈은 고작 2000원뿐이었다"며 "매일 108배와 명상, 등산, 5일간 단식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죽을 것 같아서 도망간 게 터닝포인트가 됐다. 그 뒤로 정신적·신체적으로 건강해졌다”고 말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른 정 대표는 이전에 무역을 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창업에 도전했다. 하지만 창업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2015년 4월에 연세대학교 창업선도대학 심사에서 서류 탈락을 맛봤고, 중소기업청 재창업 R&D 사업 및 기술보증기금 재창업 재기 지원보증 등 많은 재창업 프로그램에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정 대표는 떨어질 때마다 그 이유를 물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꾸준히 수정‧보완해 나간 결과 2015년 6월 정부의 ‘재도전 성공 패키지’에 합격했고, 2016년 2월에 재창업에 성공 그해 매출 92억원을 기록했다.
정 대표는 또 창업 활성화를 위해 사업을 실패한 경영자들이 재기할 수 있는 활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사업경험을 창업의 마중물로 보기 때문이다. 그는 “오랫동안 사업을 하다가 실패한 사장님들은 다양한 경험과 자산이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비행기를 타도 마일리지가 있다. 짜장면을 먹어도 쿠폰을 준다”며 실패한 사장님들의 체납세금을 1%라도 유예할 수 있는 분할납부유예제도 활성화를 조심스럽게 제안하기도 했다.
정 대표가 기타를 완전히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세계 악기 시장을 제패할 제2의 ‘크라켄’을 꿈꾼다. 그는 “서두르지 많고 긴 호흡으로 갈 것”이라며 “시대 트렌드에 맞춰 악기 쪽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계속 기타와 관련된 기술과 부품을 연구·개발 중이며 부품은 특허 위주로 진행하고 있다”며 “대학이나 공공기관이 악기 관련 특허를 많이 갖고 있고, 충남대학교와 산학협력을 통해 기타 픽업 모듈 관련 특허를 인수했다. 이런 것들을 실전 사업으로 연결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향후 사업 계획을 밝혔다.
◆ 창업 아티스트 국내 1호, 정금종 대표는 누구?
"내 취미는 도전"
정 대표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서울창업허브에서 창업 멘토로 활동하면서 다른 창업자들을 돕고 있다. 이를 위해 그는 매주 수요일 밤 12시까지 연세대학교에서 창업학 석사과정 수업을 듣는다. 다른 학교의 창업경영컨설팅학 수업도 이수했다.
정 대표는 누구보다 다른 창업자들의 고초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역시 뼈아픈 경영실패와 이후 재 창업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재창업 초기 사업계획서를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정부 공모전에 20곳 이상 지원했지만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그는 “한 달에 7번 떨어진 적도 있다”며 “도전하면서 배우는 게 보람 있었고, 몰입해서 집중하다 보니 재미도 있었다"며 "그 이후로는 정부 과제에 떨어져 본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지속가능한 경영이 창업보다 더 어렵고, 아이를 키우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걷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했다. 어려운 순간순간을 도와주게 되면 창업자들이 오히려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 대표에 따르면, 창업 이후 3년 이상 살아남는 기업은 전체의 30%에 불과하다. 7년 이상으로 범위를 넓히면 10%로 줄어든다. 그는 “나도 재창업 과정에서 컨설팅과 교육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좀 더 효율을 높이려면 실전 사업을 많이 한 창업자들이 다른 창업자들을 다각도로 도와줘야 한다”며 “창업의 성공률이 높아지고 선순환 구조가 되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