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문과라서 죄송)’하다는 이들의 자조는 과연 엄살일까. 지난달 10일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행한 ‘노동리뷰’ 4월호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졸업자 전체 실업률은 15.9%다. 인문사회계열 대학 졸업생으로 대상을 한정하면 실업률은 21.2%로 뛴다.
체감실업률의 경우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15~29세 졸업자의 지난해 체감실업률은 33.6%다. 반면 인문사회계열 대졸자의 경우 40.2%에 달한다.
문송에게도 미래가 있을까. 있다면 그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최근 ‘문과에도 길은 있다’를 펴낸 양대천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를 지난달 30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양 교수는 “청춘을 학점에 버리지 마라”고 말했다. 감상적인 조언이 아니라 칼날 같은 충고다. 한정된 시간 안에서 효율적으로 취업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양 교수는 “문과생 같은 경우에는 기술을 모른다. 똑같은 스펙에 똑같은 내용의 자기계발만 준비한다. 그러니까 사회에서도 기술이나 전문 분야가 있는 이공계 학생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양 교수는 출신지·신체조건·학력·학점 등을 배제하는 ‘블라인드 채용’에 문과생의 길이 있다고 단언했다. “채용시장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기존의 학벌과 학점, 공인영어시험 점수를 대체하는 자리에 무엇이 들어갈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명백한 답은 직무능력”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숫자의 시대’…회계·통계 모르면 바보
양 교수가 말하는 직무능력은 크게 두 가지다. 회계 및 통계 관련 지식과 실제 산업 현장에서의 경험이다. 문과생에게 통계라니? 양 교수는 “지금은 ‘숫자’의 시대”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기업 전체가 숫자의 시대로 돌입했다. 숫자를 모르면 전 부분에서 보고 자체가 안 된다. 심지어 생산관리나 연구개발 부서에서도 회계를 모르면 적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소한 재무제표를 읽고 회사의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양 교수는 “숫자를 피해 문과를 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이라며 “자신의 전공이 영문학이든 신문방송학이든 따질 필요 없이 선별적으로 회계학·통계학 과목을 수강한다면 교내에서 수업을 통해 직무지식 준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재경관리사 등 조금만 준비하면 취득할 수 있는 연관 자격증이 있다. 회계에 대한 실무 감각을 익힐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기업 등에서는 해당 자격증에 가산점을 주기도 한다"면서 ”이왕 공부하고 연이어 관련 자격증을 딴다면 아주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경험,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양대천 교수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것은 동종산업 내 직무 경험”이라며 “한 학기라도 휴학해서 현장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턴이나 생산직 등 근무 형태를 가릴 것 없이 자신이 지망하는 산업 현장에서 근무한다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의 저서 ‘문과에도 길은 있다’에도 실제 사례가 나온다. LG전자 입사를 꿈꿨던 양 교수의 제자 중 한 명은 1년간 LG전자 평택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며 스마트폰을 만들었다. 이후 상품기획 분야에 지원한 그는 생산직으로서의 생생한 경험을 ‘스펙’으로 삼아 미래 전략을 제시했다. 물론 결과는 최종 합격이었다.
양 교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머릿속으로만 직무를 상상하다 보니 면접에서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며 “자기소개서부터 인터넷에 올라온 남의 문구를 베껴 쓰게 되고, 면접장에서도 억지로 외워서 쓰는 표현으로 일관하다보니 제대로 표현도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규모가 작은 곳에서 인턴으로 근무할 경우 나중에 취업에 불리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많이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며 “어디서 근무했든 산업과 직무에 대한 경험을 갖춘다면 어느 기업이든지 받아들이고 싶은 인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도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야
양 교수는 대학 교육 또한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변화할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양 교수가 재직 중인 중앙대 또한 2009년부터 전교생 필수과목으로 회계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양 교수는 “회계에 좀 더 친근하게 접근했던 부분은 아주 훌륭한 노력이라고 보고 있다. 의미 있는 대학의 변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이 ‘진리 추구’라는 본연적 기능을 하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패러다임을 반영해 가면서 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라고 물으며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배출하는 데 대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대학 차원에서 노력해야 될 부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