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국 얄타 회담. (왼쪽부터)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얄타회담은 패전국 또는 해방을 맞은 피식민지 국가들에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자유선거를 통해 해당 민족과 인민의 뜻에 부합하는 신정부 수립을 지원하기로 합의했으나, 문제는 극동지역이었다. 3인은 비밀의정서를 채택했고, 소련이 독일 항복 후 2~3개월 이내에 대일본전에 참전해야 하며, 그 대가로 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잃은 영토를 되찾는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로써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권리’가 승인되었다. 스탈린은 독일이 항복(5월초)한 뒤에도 극동전선 참전을 미루다가,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이틀 뒤인 8월 6일 참전했고, 한반도 북부에 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