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회담의 핵심 의제는 대일본 전쟁 협력방안이었고, 일본 패망 후 일본 영토 처리에 대한 기본방침을 합의했다. 우리 민족에게 뼈아팠던 것은 이 합의가 “1914년 이래 일본이 점령한 모든 영토의 탈환”이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반도의 주권이 한국인에게 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청일전쟁(1894~1895) 당시 일본이 빼앗은 대만을 종전 후 중국에 즉시 반환한다는 합의와 배치된다.
전후 처리 문제와 관련해 백범과 소통하던 장제스의 노력으로 한반도 문제가 제5항에 포함되었으나, 특별조항이었을 뿐 아니라, “적절한 시기(in due course)”라는 단서가 붙음으로써, 한반도의 운명은 연합국의 손에 놓이게 되었다. 임시정부가 국제적 승인을 얻지 못하고, 참전국 지위 획득에 실패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치르게 된 실로 절망적인 대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