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저격수’로 통하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갑질 근절’과 ‘재벌 개혁’이란 과녁을 조준한 채로 10개월을 달려왔다.
5대 기업 개혁과 함께 대기업집단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근절을 외치는 공정위는 ‘김상조 효과’에 힘입어 한국사회의 공정경제 정착에 한 걸음씩 다가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벌에겐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이 부여될 것으로 보인다.
◆“재벌 3세, 한국경제의 앙트레프레너 아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바라보는 재벌 개혁은 불태워 없앤다기보다 재벌 스스로 사회의 요구를 수용해 변화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지난해 연말 '혁명'보다는 '진화'를 강조한 김 위원장의 개혁 방향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1세대인 창업자들은 무에서 유를 창출했고, 2세대는 도약에 성공해서 살아남았다. 이들에 대한 평가에는 명암이 공존하지만, 한국 경제의 주역으로 활동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들은 한국 경제의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혁신 기업가)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다만 문제는 3세대에 있다. 할아버지·아버지만큼의 평가를 받기도 힘들고, 그들 스스로도 지금의 시스템에서 경쟁력을 평가받는 경영인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런 변화가 비가역적인 시대의 흐름이고, 우리 사회가 3세대에게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면서 “이들이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도 잘 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의 이런 시각은 최근 갑질의 근원지로 꼽히는 재벌 3세에 대한 따가운 사회적 눈총과 겹친다.
갑질 행태를 벌이는 3세에게로 경영권을 승계하는 재벌에 대해 '김상조식 개혁'이 매서워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5월엔 기업에 예측 가능성을 제시한다"
김상조 위원장이 취임 당시부터 강조한 대목은 ‘예측가능성’이다. 다만 기업은 여전히 김상조식 개혁의 예측가능성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3월 주주총회가 마무리된 만큼, 5월 초중순께 5대 재벌뿐 아니라 대상을 더 넓힌 재계 간담회를 통해 다양한 내용을 경청할 예정”이라며 “재계의 애로사항 중 예측가능성을 높여달라는 얘기가 많이 나올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계 간담회에서 현 정부의 기업정책 방향과 강도를 논의하고, 정부와 재계 사이의 공감대를 넓히는 등 예측가능성을 살펴볼 것”이라며 “사실 우리나라는 상호 소통의 경험이 부족한 국가다. 정부와 재계가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현실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번에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취임 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포지티브 캠페인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번 주주총회 역시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한편에서는 재벌개혁이 여전히 너무 느리다, 느슨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업으로부터는 숨쉬기 힘들다거나 (공정위 개혁이) 거칠다라는 얘기도 듣는다. 양립하기 어려운 비판이 모두 존재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립하기 어려운 비판의 한가운데서 저뿐만 아니라 공정위 직원 모두 현실에 적합한 균형된 포지션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개혁 속도가)너무 느리다거나, 혹은 너무 거칠다는 양쪽의 비판 모두를 경청하며 균형을 맞춰나갈 것"이라며 칼날 위의 균형을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개혁의 변화에 다소 뜸을 들이는 삼성에 대해 "어떤 기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삼성도 이사회의 개방성을 높이고 투명한 의사결정구조를 구축해 경영진과 대주주가 의사 결정에 책임을 지는 시스템으로 변화해 주길 바란다"며 "어렵겠지만 금산 결합으로 인한 이해상충의 해소 문제에 대해 스스로 합리적인 방향을 시장에 제시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동 안 하는 과거 모델 극복할 새 모델 없는 게 걱정"
단시일 내 경제발전에 성공한 한국경제의 성장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게 김 위원장의 진단이다.
그는 "과거 한국경제의 성공을 이끌던 성장방식의 경우, 지금은 효과가 많이 떨어졌다. 더 이상 과거의 모델은 작동하지 않는다"며 "과거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데, 더 큰 문제는 이를 대체할 새로운 모델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결국은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이 많다. 기업정책에 대한 판단은 기업의 몫이지만, 경제질서 전체에 대해서는 정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며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과거의 모델로부터 새로운 모델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으로,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변화는 짧은 기간 내 이뤄지는 게 아니고, 과도기 역시 굴곡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경제정책 성패는 과거의 균형으로부터 새로운 미래의 균형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에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때로는 강한 자극을 주는 오버슈팅을 해야 할 것이고, 또 때로는 인내하고 기다리는 언더슈팅을 하면서 새로운 균형으로 수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금처럼 새로운 변화의 초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는 오버슈팅 타이밍이 될 수밖에 없다. 변화를 일으키는 모멘텀이 필요할 때"라며 "최저임금 인상, 법인세 인상 등 정부정책에 대해 기업과 야당 측에서 우려하는 부분은 안다. 그러나 이런 기조가 영원히 간다고 보지 말고, 새로운 질서로 가기 위한 과도기의 초기 단계에서 변화를 주기 위한 자극제라는 것을 이해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변화, 기업 결정 늦어지면 모두가 짊어질 코스트 커진다"
김 위원장은 한국경제가 변화의 타이밍에 제때 결정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기업 역시 스스로의 경영정책 결정과 함께 그에 수반된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경제 혁신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경제학에는 답이 없는 게 3개가 있다.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 △오너와 전문경영 여부가 그것"이라며 "관건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 정답이 없는 것에 대해 경영자가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올바른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시대마다, 나라마다, 업종마다, 또 기업마다 3가지 문제는 제각기 다르다"며 "그렇게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해서 가만이 있어서도 안 된다. 한국경제는 지금 그런 결정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늦어질 경우, 커다란 코스트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상조 위원장은 "한국경제 변화의 과도기 지점에서 기업에 결정을 촉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먼저 변화의 모델을 정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고, 그런 차원에서 혁명보다 진화의 시각에서 방향성을 찾아갈 때 비로소 경제구조 혁신과 재벌 개혁이라는 목표를 달성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