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10월 10일 중국 한커우(漢口)에서, 약산이 이끈 민족혁명당이 주축이 된 조선민족해방전선(약칭 민족전선)이 결성했다.
중일전쟁 발발 1년을 맞아, 민족전선은 중국 군사위원회 위원장 장제스에게 조선의용군을 조직해 중국 각 전구(戰區)에 배속시켜 항일전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장제스는 모든 한인 항일세력의 참여를 전제조건으로 이 제안을 수락하고, 병력 규모를 감안해 명칭은 조선의용대로 하며, 대원들은 대적 선전 및 포로 심문 등 비전투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민족전선 측은 광복진선 쪽에 합작을 제의했으나, 중국군 지휘계통에 속하지 않는 독자적 군대 창설을 구상하던 임정은 호응하지 않았다.
조선의용대는 실제로는 상당한 독자성을 갖고 움직였다. 창설 당시 조선의용대원은 1백명 규모였으며, 총대장은 약산, 민족혁명당원으로 구성된 제1구대장은 박효삼, 조선청년전위동맹원으로 구성된 제2구대장은 이익성이 맡았다. 1939년 말, 대원 수는 330명으로 늘어났고, 본부 포함 3개 지대로 재편됐다.
김자동 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의 증언에 따르면, 조선의용대는 기본임무 상 비전투부대였다. 그는 약산의 부인 박차정 여사가 전투 중 입은 부상으로 숨졌다는 기록에 대해서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수당 가족은 1943년 초 충칭에 있던 약산의 거처를 찾아 박 여사를 문병했다. 얼마 뒤 박 여사는 지병인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자동,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푸른역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