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애국단. 사진=임시정부 기념사업회 제공]
백범 김구가 1931년 조직한 비밀테러조직으로, 일제 수뇌부 처단을 목표로 삼았다. 임시정부는 완바오산 사건으로 빚어진 중국인들의 반한감정을 돌리고, 독립운동의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하기 위한 테러공작 조직 및 실행 전권을 당시 국무령(國務領) 백범에게 일임했다.
한인애국단은 1931년 10월경 상해에서 결성되었으며,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 김석(金晳), 이수봉(李秀峰) 등이 핵심간부를 맡았고, 이봉창, 윤봉길(尹奉吉), 최흥식(崔興植), 유상근(柳相根), 이덕주(李德柱), 유진만(兪鎭萬) 등 독립 제단에 한 몸을 바칠 것을 맹세한 애국청년 80여명이 가담했다. 수당의 남편 성엄 김의한 역시 단원이었으며, 결성 과정부터 백범을 도왔다.
폭탄을 비롯한 무장을 책임졌던 비밀요원이, 그 무렵 왕일서(王逸署)라는 가명을 쓰고 중국군 상해병공창 군기처 주임으로 근무하던 김홍일(金弘壹)이다. 윤봉길 의사에게 도시락폭탄을 제공한 이가 바로 그다. 중국군 중장(中將)까지 올랐으며, 해방 후 대한민국 육군 소장을 지냈다.
한인애국단은 조선총독 암살(1932년 4월, 이덕주․유진만), 국제연맹의 만주사변 조사단원을 영접한 일본 고관 암살(최흥식․유상근)을 시도했다. 일제는 백범과 한인애국단에 거액의 현상금을 내걸고 뒤를 쫓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인애국단 단원들 일부는 난징군관학교 등에 입학해 군사교육을 받고, 광복군(光復軍)의 주역이 된다.

[1931년 9월 일본 관동군이 장쉐량 군을 공격해서 봉천성을 장악한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아주경제DB]
만주사변(滿洲事變):만주 차지해 대륙 삼키려던 일제의 발악
1929년 세계대공황으로 성장의 벽에 부딪힌 일제는 만주를 차지해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1931년 9월 18일, 지린성(吉林省) 펑텐시(奉天市) 교외 류탸오후(柳條湖)에서 장쉐량(張學良)의 만주군으로 위장해 군사적 충돌을 꾸민 다음날, 관동군은 만주를 전면 침공했다. 류거우탸오 사건과 관동군 침공을 통틀어 만주사변이라 이른다.
만주를 점령한 관동군은 다음해 3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를 내세워 이른바 ‘오족협화(五族協和, 오족은 일인․중국인․만주인․몽고인․조선인을 가리킨다)’라는 기만적인 슬로건 아래 괴뢰국 만주국을 세웠다. 만주사변은 중국인들에게 격렬한 반일감정을 불러일으켰고, 임시정부가 중국국민당과 공동의 항일전선을 구축하는 변곡점이 되었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이자 만주 괴뢰국 황제 아이신기오로 푸이. 사진=아주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