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섣부른 혈기 하나로
오르는 일에만 골몰하느라
내려가는 길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어느덧 전방엔 ‘더는 갈 수 없음’의
석양을 등지고 돌아선 너의
한쪽 어깨 이미 어둠에 묻히고
발밑에 돌무더기 시시로 무너져내리는
아슬한 벼랑 끝에 외발로 섰다
세상에 진 빚과 죄로
몸보다 무거운 영혼의 무게
추슬러 이마에 얹고
남은 한 발 허공에 건다
아득하여라
해 아래 떨어지는 모과의 향기
바람에 섞이듯 그렇게
사라지는 소멸의 착지(着地) 그
아름다운 낙하를
낙법(落法) / 홍윤숙
■ 낙법이란 말에는 무협소설의 매력이 숨어있다. 무술이란, 인간의 몸이 존재의 질곡에 묶인 것이 아니라는 오래된 꿈이다. 몸이 마음 대로 되는 경지, 몸의 움직임이 물질과 감각을 뚫고 나가 몸을 초월하는 경지. 무술은 그것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기저항이나 중력의 법칙을 이겨야 한다.
물론 그냥은 못 이긴다. 내공이 쌓여야 한다. 내공은 '연습의 신화'이다. 연습은 인간을 신에 가깝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내공은 몸과 정신이 한 올의 촉수로 만나는 경지이다. 장자에 나오는 백정처럼 칼끝이 번개처럼 움직여도 뼈에 닿지 않고 살을 발라낼 수 있는 그 경지이다. 짐승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이 자유자재로 춤추는 칼날. 그게 달인(達人)의 경지다.
왜 인간은 이런 경지를 꿈꾸는가. 평생 한계와 질곡 속에서 살아야 하는 몸의 답답함과 무거움에 대한, 반란의 꿈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만 '연습'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무협소설은 말한다. 무시무시한 내공의 수련을 거쳐 몸의 기적을 이룬 무협은 인간을 매료시킨다.
낙법의 공력 또한 인간의 불가능을 뛰어넘는 꿈이다. 무거운 인간이 그 무게에 의해 고통받지 않고 급격한 추락에서 부드럽게 땅에 내려앉는 일. 인간에게서 갑자기 무게가 사라지고 깃털같은 팔랑임만 남는 일. 탄력과 부드러움이 절묘한 리듬을 만들어내면서, 몇 바퀴 허공을 돌고나서도 고양이처럼 살풋 착지하는 일. 낙법의 상상에는 인간의 무의식에 내장된 추락의 공포를 바람결에 날려버리는 경쾌한 반전이 있다.
추락사의 비극은, 그들이 낙법을 익히지 않은 것에 있기도 하다. 나뭇잎처럼 팔랑거리며 내려앉을 수 없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돌려 말하면 추락하지 않는 것은 날개가 있다. 낙법은 날개 없는 것들이 추락하지 않고 행복하게 착지하는 꿈이다.
홍윤숙의 '낙법'은 차원이 조금 다르다. 이를 테면 시간의 낙법이다. 공간의 낙법이라면 몸을 가볍게 만드는 법, 회전의 탄력을 높이는 법, 부드럽게 땅에 닿는 법 따위를 익히면 되겠으나 시간의 낙법은 어찌 해야 하는가. 올라가는 시절과 내려가는 시절. 올라갈 땐 영원히 올라갈 것 같은 건방진 혈기 때문에 내려갈 일 따윈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창 좋다 싶더니 거의 '추락'에 가깝게 내려가는 게 아닌가. 이제쯤 낙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공 없이 금방 만들어질 리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삶이란 저마다 '약간 느린 동작'의 투신이다. 어디로 떨어지는가. 바로 무덤이다. 별로 깊지도 않은, 2미터 아래로 떨어지면서 우린 얼마나 호들갑을 떠는가. 그런데 추락의 공포감이 만만찮다. 홍윤숙은 낙법에 관해 슬쩍 코치를 해주는 셈이다. 인생 추락의 장면을 자주 목도하는 요즘, 등법(登法)보다 낙법이 훨씬 난도가 높은 것임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이상국 아주T&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