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 되지 않도록
나로 인해 그이가
상처 받지 않도록
사랑으로 하여 못견딜 그리움에
스스로 가슴 쥐어 뜯지 않도록
사랑으로 하여 내가 죽는 날에도
그 이름 진정 사랑했었노라
그 말만은 하지 말도록
묵묵한 가슴 속에 영원이도록
그리하여
내 무덤가에는
소금처럼 하얀 그리움만 남도록
안도현의 시, 양희은 노래 '사랑, 당신을 위한 기도'
아직도 이 시를 듣고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핑 돕니다. 당신 때문이 아니라 끝없이 내가 생각나서 그렇습니다. 시는 '당신을 위한 기도'라고 제목을 달았지만, 그건 당신과 나 사이에 숨쉬는 사랑, 그 사랑을 위한 기도가 아닐까 합니다.
기도는 4개의 '않도록'과 1개의 '말도록', 그리고 '영원이도록' 하나와 '남도록' 하나로 되어 있네요. 않도록과 말도록은 모두 진행된 사랑에 대한 금지를 소망하는 기도입니다. 금지를 소망하고 있지만 금지되지 않은 사랑에 대해 고백하고 있는 말들이기도 합니다. 금지할 것을 금지하지 못한 것, 그래서 지금껏 그 사랑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것, 그것에 대한 후회가 저 다섯 번의 맹렬한 금지에 담겨있는 반복의 두터운 질감이 아닐까 합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 되지 않도록. 시의 시작은 사랑의 불온함에 대해 고백하고, 그것이 불온함의 경계를 넘은 것에 대해 고백하는 일부터였습니다. 사랑 자체가 불온할 이유는 없으나, 세상이 뜯어말리는 사랑이 존재하고, 사랑이 놓여야만 할 자리와 형식에 대한 규칙이 엄혹히 존재하기에, 그 엄혹한 존재를 환기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이 잘못이 아니라 사랑이 죄짓는 경계를 넘은 것이 잘못이라는 말이지만, 사실은 옥시모론(형용모순)일 뿐입니다. 사랑은 원래 죄짓는 경계가 없이 만들어진 것이고, 경계를 넘어도 사랑은 사랑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인간이 형편과 사정과 규율을 들어 금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을 뛰어넘는 자는 세상의 규율을 위반한 자이긴 하지만, 사랑의 로직에는 충실한 자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 시인은 짐짓 모른 체 하며 '죄짓는 일이 되지 않도록'으로 못을 박습니다. 지극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넘지말아야할 '세상의 선'은 지켜야 한다는 그 마음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당신에게 고통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나로 인해 그이가 눈물짓지 않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이렇게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겠으나, 죄짓는 일이란 그대에게 죄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만들어놓은 사랑의 자리에서 벗어난 죄를 짓는 것으로 하여 그대 마음에 고통을 안기는 일이라는 것을 밝혀놓고 싶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으로 하여 못견딜 그리움에 스스로 가슴 쥐어뜯지 않도록. 이 말은 앞의 기도와는 조금 다릅니다. 사랑하는 일이 죄짓는 일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였으나, 그 죄짓는 일이 내부에서는 진행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그 사랑을 말리고자 하였으나, 말릴수록 사랑은 거세지고 사나워져 가슴 속에서 뛰는 말처럼 진정시키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눈물짓지 않고 상처받지 않도록 기도하였으나, 눈물을 짓고 상처를 받고 말았습니다. 다만 거기에서 멈춰, 못견딜 그리움에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을 면하도록 기도할 뿐입니다.
사랑으로 하여, 내가 죽는 날에도 그 이름 진정 사랑했었노라 그 말만은 하지 말도록. 이 기도는 잔인하다 할 만큼 집요합니다. 사랑이 금지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금지를 넘었더라도 극한의 고통을 면하기를 바라는 것. 이것은 삶이 무단히 부단히 저지르는 어리석음과 각성의 양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랑했음을 끝내 '발설'조차 하지 말라는 건, 가혹하지 않을지요. 사랑을 세상 안에 가뒀고, 그것을 내 인내심과 냉정 안에 가뒀다면, 굳이 그걸 발설하여 헛된 물의와 세상의 상상을 부추길 일 또한 한 부질없을 수도 있겠지만, 사랑을 사랑이라 못하고 평생을 살아온 그 굳은 혀를 끝까지 저토록 단속하다니...대체 무엇을 위한 사랑이란 말인지요.
묵묵한 가슴 속에 영원이도록. 그리하여 내 무덤가에는 소금처럼 하얀 그리움만 남도록. 끝내 발설하지 않았으니 사랑은 한 사람의 가슴 속 영원한 미궁에 갇혀 세상에선 알지 못하는 일이 되겠지요. 사랑함으로 죄짓는 일이 되어버리는 그 질곡은 완전범죄처럼 다문 입술 안에 갇혀 가슴의 관짝에 영원히 누워있겠지요. 그 사랑은 마치 다비한 부처의 사리처럼 하얗게 남아 그 궁극으로 몰고간 지극한 묵언정진을 증거하겠지요. 그리움이 소금처럼 하얗게 변할 때까지 그저 가슴에만 담아두는 사랑으로 남고자 하는 기원.
안도현의 기도는 그러나, 기도한 내용만 있지 그것을 살아내고 앓아냈을 주체의 삶과 행방에 대한 이야기는 끝까지 생략해놓았습니다. '나'는 어떻게 되었는지, 당신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사랑은 또한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그 회한같은 기도만 남아, 끝없이 읽는 사람의 '사랑'을 심문하고 '기억'을 다그치고 '후회'를 돋워 염장을 지르고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즉시 죄가 되는 사랑을, 죽을 때까지 가슴에 묻어두고 쥐어뜯으며, 죽는 날에도 고백하지 않으며, 무덤 속에서 그 사랑이 하얀 소금처럼 응결되어가는 이미지는, 까닭도 없이 독자인 나를 무너지게 하며, 그걸 지키지 못한 사랑에 대해 뉘우치게 합니다. 그 고딕건축같은 상상력이 차가운 겨울 한켠에서 한점 오염없는 청결한 사랑의 완전한 환상을 돋워내는, 기이한 시입니다. 돌아가 그 사랑을 다시 하고 싶어지도록.
이상국 아주T&P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