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4일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아베 총리를 만나는 자리에서 촉발한 저자세 외교의 핵심은 그가 허리를 숙여 한 인사보다 바로 의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사진을 보면 아베 자신은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의자에 앉아 있고 홍 대표는 민무늬 살구색 의자에 앉아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홍 대표가 앉은 의자는 아베가 앉은 의자보다 낮다.
같은 날 아베는 안토니오 구테흐스 UN사무총장도 만났다. 사진을 보면 구테흐스가 앉은 의자는 아베의 의자가 같은 모양이다. 그를 상당히 예우하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6월 8일에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아베 총리를 만났다. 당시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면담을 수 시간 앞두고 의전 차원에서 면담 장소를 사전 점검하던 국회의장실 인사들은 이상한 의자 배치를 발견했다. 정 의장과 아베 총리가 앉을 의자의 높이가 달랐던 것.
당시 정 의장실의 한 인사는 6월 1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베 총리가 높은 곳에 앉아 정 의장을 내려다보는 상황이 되는데 이를 발견하고 굉장히 놀랐다. 대외적으로 한국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보다 일본 행정부를 지휘하는 아베 총리의 격이 더 높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의자 문제를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이면 아베 총리를 만나기 곤란하다고 일본 측에 분명하게 알렸다"고 설명했다. 결국 아베는 자신의 의자를 정 의장과 동일한 높이로 맞췄다.
그렇다면 서훈 국정원장이 13일 남북·북미 정상회담 추진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난 자리에는 어떤 의자가 나왔을까.
서훈 원장에게 아베는 자신과 같은 의자로 격을 맞췄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방문한 것에 대한 예우 차원인 것이다. 이같은 아베의 의중에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른바 '재팬 패싱'을 불식시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