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연차평가 폐지·행정업무 분리...연구자 옥죄는 R&D 규제 개편

2018-03-08 16:00
  • 글자크기 설정

임대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혁신성장을 위한 국가 R&D 분야 규제혁파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과기정통부]


# A기업은 신약 개발을 목표로 정부 연구개발(R&D) 과제를 3년째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해외 B기업으로부터 유사한 제품 출시 소식이 들려왔다. 당초 과제 종료를 2년 남겨두고 있던 A기업은 해당 C전문기관에 연구 중단을 요청했으나, 지금까지 지원받은 연구비를 모두 반납해야 연구중단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 D기관의 연구실에서는 학생연구원 E씨가 행정처리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E씨는 당초 생물 분야 최고의 연구자라는 꿈을 안고 연구실에 들어온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연구보다는 연구실 내 연구비 관리, 영수증 처리, 각종 전산시스템 입력 등 행정 처리에 집중할 뿐이었다.

연구개발의 혁신을 저해하는 대표적 규제 사례들이다. 정부는 앞으로 연구현장의 모든 연구 절차를 간소화하는 동시에 행정업무를 분리해 연구자 중심의 환경을 조성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8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제3차 규제혁파를 위한 현장대화'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혁신성장을 위한 국가 R&D 분야 규제혁파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방안은 지난해 11월 마련한 '과기정통부 R&D 프로세스 혁신방안'과 과학기술혁신본부 '연구제도혁신기획단'을 통해 수렴한 연구현장의 의견을 토대로 마련됐다. 국가 R&D 전주기에 걸친 과다한 규제 개선과 부처별 산재된 R&D 규정에 대한 정비 내용을 담고 있는 것.

정부는 우선 1년 단위 잦은 평가로 인한 비효율과 행정부담을 대폭 완화하고, 연구자의 자발적인 연구 중단을 허용하기로 했다. 현행 자진 연구 중단 시 연구비 환수 등 제재에 들어갔지만, 앞으로는 환경 변화·성실성 등에 대한 평가 후 제재 없이 기관 스스로 연구 중단이 이뤄진다.

그간 연구현장에서는 과제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쉬운 연구'에 치중되면서 R&D 성공률은 95∼98%인 반면 사업화 성공률은 30%에 불과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모든 연차평가를 폐지하고, 보고서 제출 및 부처별·사업별 최종평가 방식을 간소화하기로 했다. 과제 선정평가 시에는 심화평가(아이디어-역량 평가 분리)를 실시하고, 위원 이력제 등 평가위원회 구성·운영 내실화에 중점을 뒀다.

또 연구자가 수시로 전문기관 홈페이지를 통해 과제 공고를 확인했던 것을 확대·정례화시키고, 동일 주제라도 연구방법·전략·목표가 차별화되는 경우 기획·응모를 허용할 방침이다. 연구자 창의성을 제약하는 획일적인 RFP(과제제안요구서) 역시 꼭 필요한 경우에만 작성하도록 규정했다.

정부는 연구와 행정지원 기능을 분리하고 '사전 통제-사후 적발·환수' 중심의 연구비관리 행정도 개편하기로 했다. 이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 연구비 관리·정산, 물품구매 등의 행정업무를 배제시켜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복안이다. 연구 착수 단계에서 '물량×단가' 중심의 소요명세서 작성을 폐지하는 등 전문기관 등에서 당초 계획 대비 지출을 세세하게 관리·감독하던 관행도 없어진다.

R&D 과정의 금전적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금지되고, 선의의 피해자 권익보호를 위한 절차도 마련된다. 가령 R&D 도중 발생한 자산손실에 대해서는 연구자 비리나 고의적인 중과실이 아닌 경우 연구자 개인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게 된다. 전문기관 제재 처분에 연구자가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별도 위원회에서 연구자 소명 기회를 부여하고 추가 검토를 하는 제도도 시범 토입키로 했다.

아울러 부처별 개별 규정에 산재된 연구비 사용 기준과 연구비관리 시스템을 통합한다. 그간 부처와 R&D 사업에 따라 상이하게 적용되던 연구비 사용 기준을 일원화하고, 산·학·연 등 연구기관에 따라 연구비 사용 기준을 수요자에 맞춰 적용된다. 현행 20여개로 나뉘어진 과제관리시스템을 단계적으로 통합하고, 부처별 R&D 관리 법규도 동시 개정해 제도 혁신의 지속성·체계성을 확보할 방침이다.

임대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이번 혁파 방안을 통해 불필요한 행정부담을 완화하고, 연구행정 전문성도 강화될 것"이라며 "향후 추가적인 의견 수렴과 과제 발굴을 거쳐 연구몰입과 혁신성장을 위한 '국가연구개발특별법' 입법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KIST의 연구업적관과 기획전시관을 방문, 연구업적과 최신 연구성과를 청취했다. 이어 녹색형광물질을 활용해 포유동물의 신경세포 간 연결망(시냅스)을 3차원으로 시각화하는 '3D 뇌연결망 홀로그램'과 IT 기술과 접목해 한국인의 유전자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나이 변환 3D 몽타주 생성기술' 모습을 참관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