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시간이 거듭될수록 미국의 통상압박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자고나면 바뀌는 미국 통상전략은 세계 경제를 잔뜩 긴장시키며 핫이슈로 떠올랐다.
우리 정부도 미국발 변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단기적으로 큰 영향이 없겠지만, 장기화될 경우 금융시장을 비롯한 경제 전반에서 회복세가 둔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문 대통령은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와 한·미FTA 위반 여부 검토 등을 통해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하고, 개정협상을 통해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국은 문 대통령의 정면돌파 의지를 비웃듯 이달 들어 철강부문에서 고율 관세를 부과,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에 선전포를 했다. 업계에서는 지금 무역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는 반응이 나온다.
미국과 EU는 사실상 전쟁을 시작했다고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EU가 트럼프 행정부 '관세 폭탄' 방침에 반발,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로 대응할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역시 “미국은 WTO 규정을 무시하고, 중국 기업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밝힌 뒤 “중국은 미국의 잘못된 방식에 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 합법적인 권리를 수호하겠다”며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거시금융본부장은 “각 나라가 자국 우선주의로 치달아가면서 자유무역중심 세계경제 질서가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며 “강대강으로 각국이 맞붙고 있지만 이를 통제할 만한 주체와 국제 질서가 없다”고 진단했다.
주요 국가들이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반미(反美)연합군을 형성하는 기류를 보이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과 청와대, 정부 내부에서는 한결같이 미국을 ‘동맹국’이라고 판단해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이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지난 1월 통상법 201조 세이프가드와 무역확장법 232조(안보상 수입규제)가 차례로 발동돼 우리나라 세탁기·태양광 패널·철강·알루미늄 등이 직접적인 무역제재조치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정부도 지난달까지 유지하던 낙관론에서 신중론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정부는 5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대외통상관계장관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이날 회의에는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보건복지부‧해양수산부 등 관련 부처 장‧차관이 참석했다. 정부가 통상적으로 열리는 대외경제관계장관회의 이외에 통상 부문만 따로 논의한 사례가 드물다는 점에서 확실한 방향을 결정할지 주목된다.
다만 문 대통령의 정면돌파에 대한 신호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일 미국이 수입철강에 대한 25% 일괄 관세 부과를 발표한 이후 "미국 정부의 최종 결정 전까지 대미 아웃리치 활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는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보호무역주의에 대비한 방어전략 수립을 서둘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직접적인 후폭풍이 오기 전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 자체가 금융시장을 강타할 수 있다”며 “경제주체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주가 하락, 거래량 감소 등 금융시장 쪽에는 구체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