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의 도시 이야기] 말뫼의 터닝포인트

2018-02-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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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윤주 지역전문가·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


말뫼(Malmö)는 스웨덴 서남쪽 끝에 위치한 곳으로, 덴마크 코펜하겐 건너편에 있는 항구도시이다. 스웨덴어로 ‘자갈’과 ‘모래’라는 뜻을 지닌 말뫼는 그 이름이 지칭하듯이 13세기경 항구도시로 건설될 당시 넓은 백사장이었다. 항구도시가 된 후 인구가 늘고 19세기 중반에 철도가 개통되자 스웨덴 각지를 연결하는 중심지가 되었고, 큰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크게 발전했다.

그러나 1980년대 스웨덴 조선사업이 불황에 빠지면서 코쿰스 조선소가 폐쇄되자 말뫼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와 말뫼의 시민들은 단돈 1달러에 현대중공업으로 매각되는 코쿰스 조선소의 상징인 골리앗 크레인을 배웅하며 눈물을 흘렸다. 당시 말뫼 시민들이 조선업 시대의 마감을 슬퍼하며 배웅한 일은 ‘말뫼의 눈물’로 지칭되었으며, 그 단어는 쇠락한 도시의 비통함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러나 ‘말뫼의 눈물’이 회자되는 이유는 아픔을 딛고 모두가 힘을 모아 지역의 주된 동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롭게 주목받는 사업에 과감히 투자하여 다시 일어섰다는 것에 있다.
당시 3만여명의 실직자를 비롯하여 눈물을 흘리던 말뫼의 시민들은 쇠락한 지역을 재건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다.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설했고 그들이 흘린 눈물로 만든 다리는 다시금 도시에 활기를 띠게 하는 기적을 가져다 주었다. 바다 건너 덴마크에 비해 집값이 싸고 생활비도 적게 들면서 청정도시를 표방한 말뫼에 덴마크의 젊은이들이 집을 구하러 몰려오기 시작했고, 실직했던 많은 말뫼 사람들도 덴마크에 일자리를 잡게 되었다.

또 신사업에 투자하면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 조선소 폐쇄 후 23만명까지 줄었던 인구가 2018년 현재 기준 34만여 명까지 늘어났다. 주거공간을 비롯하여 점차 편의시설과 예술을 덧입힌 문화공간이 늘어나며 도시가 활력을 띠자 지역경제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제 다리로는 부족한지 바다 아래 해저터널을 뚫는 프로젝트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엔 전통적 공업도시였던 말뫼를 친환경 지식기반의 도시로 개념을 설정하고 아픔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과거 코쿰스 조선소(위)와 현재의 말뫼. 골리앗 크레인이 있던 자리에 54층 짜리 주상복합 건물 '터닝 토르소'가 우뚝 서 있다. [사진=윤주 소장 제공]


이제 말뫼는 울지 않는다. 코쿰스 조선소 골리앗 크레인이 있던 그 자리에 재건의 상징인 54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인 ‘터닝 토르소’를 세우며 당당히 일어났다. 조선업 불황으로 쇠락한 도시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고자 1995년부터 말뫼 시민들은 일마르 레팔루 시장을 포함한 위원회를 설립해 시 행정기구와 유기적으로 협력했다. 과거 조선소였던 흔적을 옆에 두고 말뫼대학을 설립하고 일자리를 새롭게 인큐베이팅하며 IT와 친환경 그리고 예술과도 조화를 이루는 도시 먹거리를 개발하여 침체에서 성장으로의 터닝 포인트로 삼았다. 행정당국과 전문가, 시민이 함께 협력해 도시의 환경을 바꾼 말뫼의 도시재생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돈 1달러에 도시의 상징인 크레인을 울산 현대중공업에 내주며 흘린 말뫼의 눈물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 골리앗 크레인을 가져와 강렬한 붉은색을 칠해 랜드마크로 삼아온 현대중공업도 세계적인 조선업의 위축에 불황을 겪으며 울산에 영향을 주고 있고, 이제 그 여파는 조선소가 있는 다른 도시에도 미치고 있다.

군산도 그렇다. 군산은 조선소에 이어 GM공장 폐쇄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설 민심이 얼어붙었고 큰 충격에 빠져 있다. 공장 폐쇄 원인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가 오가며 지역 경제는 물론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까지 요동치고 있다. 게다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GM의 군산공장 폐쇄 결정에 대해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이런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라며 "한국에서 디트로이트로 그들이 돌아오고 있다"고 말했다. 철수 시 파장이 훨씬 클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 가운데, 수많은 노동자와 한국 경제를 협박하며 이기적인 협상을 하려는 그들과 이 사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말뫼가 눈물을 딛고 일어서 위기를 극복했듯이 시련을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할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도시들은 말뫼와 같지 않다. 지리적 여건, 지역 인프라 등 상황도 다르다. 방향을 잡지 못해 우왕좌왕 내몰리며 GM의 처분만을 기다리기 보다는 부실 원인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분석하고 지역적 상황을 고려하여 시련을 함께 극복할 방법을 노동자, 시민, 행정기관이 함께 모색하고 극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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