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과거사위가 선정한 1차 사전조사 대상 사건은 김근태 고문사건(1985년), 형제복지원 사건(1986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1987년),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1991년), 삼례 나라 슈퍼 사건(1999년), 약촌오거리 사건(2000년), PD수첩 사건(2008년), 청와대 및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사건(2010년), 유성기업 노조파괴 및 부당노동행위 사건(2011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사건(2012년), 김학의 차관 사건(2013년), 남산 3억 원 제공 의혹 등 신한금융 관련 사건(2008년, 2010년, 2015년)이다.
하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함께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이 자행한 대표적인 인권 유린 사건인 부천서 성고문 사건(피해자: 권인숙 위원장)은 1차 사전조사 대상서 제외됐다.
이를 계기로 당시 검찰이 권인숙 위원장을 성고문한 문귀동 당시 부천경찰서 경장을 적극적으로 비호한 어두운 과거에 다시금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귀동은 5ㆍ3 인천사태 관련 수배자의 소재지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1986년 6월 6일 오전 4시 30분쯤부터 2시간 반 동안, 그리고 7일 오후 9시 30분쯤부터 2시간 동안 권인숙에게 성고문을 가하며 진술을 강요했다.
사건발생 약 1개월 만인 7월 3일 권인숙은 문귀동을 강제추행 혐의로 인천지방검찰청(이하 인천지검)에 고소하고 5일에는 권인숙의 변호인단 9명이 문귀동과 옥봉환 당시 부천경찰서장 등 관련 경찰관 6명을 독직·폭행 및 가혹행위 혐의로 고발했다. 문귀동은 사실을 은폐한 채 권인숙을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인천지검은 1986년 7월 16일 발표한 부천서 성고문 사건 수사결과에서 “문귀동이 조사를 행한 조사실은 2면벽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안이 들여다보이고 조사실 뒤편에 있는 무기고의 전등불빛이 조사실 안으로 비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 바로 옆의 조사실에서도 다른 경찰관들이 날씨가 더워 모두 문을 열어 놓은 채 다른 피의자를 조사하면서 문귀동의 조사실 앞을 왔다갔다한 사실이 있었으며 또한 권인숙과 함께 부천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어 있던 최모 여인(32세), 박모 여인(30세) 등도 참고인 진술에서 조사받고 권인숙이 폭행을 당했다는 말은 유치장에서 한 일이 있으나 성적 모욕을 당했다는 말은 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고 옆 조사실에서 조사를 한 경찰관 김○○, 권○○, 박○○ 등도 그와 같은 사실을 목격하거나 감지한 바 없다고 진술한 점 등에 비추어 사실로 인정할 수 없음”이라며 문귀동이 권인숙을 성고문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당시 인천지검은 문귀동이 권인숙을 폭행한 혐의만 인정해 기소유예 처분했다.
검찰 과거사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사건이 추가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