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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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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신용문객잔’ 포스터]
‘황비홍(黃飛鴻)’시리즈를 만든 서극(徐克)이 제작한 것으로 임청하와 장만옥, 양가휘 등 이름난 배우들이 등장한다. 스산한 바람이 부는 황량한 벌판에 자리한 숙박업소 용문객잔의 모습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반전(反轉) 그리고 객잔 앞 들판에서의 대결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 영화는 ‘토목보의 변’의 역사적 사실에서 한 가닥을 잡아 만들어 낸 작품이다.
▶소삼협 근처 객잔 배경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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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영화속 환관]
강직한 충신 우겸을 누명을 씌워 제거한 것은 간신인 환관들이었다. 영화는 우겸의 처형과 함께 그 가족들은 유배의 길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환관들은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해 부하들을 보내 우겸의 가족들까지 없애 버리려 했다.
그 곳이 장강 소삼협(小三峽) 가운데 한 곳인 용문 근처 한 객잔이었다. 그 과정에 무협영화에서 반드시 나타나야할 정의의 칼잡이가 끼어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물론 정의 칼잡이는 우겸을 따르던 검객들이었다. 소삼협은 뛰어난 경관을 지닌 곳이지만 영화의 객잔 주변은 황량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변세력 비하시킨 무협작품
쏟아져 나온 많은 무협 소설과 영화 가운데 명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적지 않다. 물론 토목보 사건 자체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는 영화와 TV 드라마, 무협소설도 적지 않다. 그 작품들 대부분은 오이라트와 몽골을 막북의 오랑캐처럼 묘사하면서 포로가 된 황제도 명나라의 뛰어난 무인들이 직접 구출하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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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만리장성 서쪽 끝(가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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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만리장성 성곽]
그러나 당시로서는 황제까지 포로로 잡았다가 돌려준 오이라트를 그냥 야만인으로 취급하며 무시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이후 명나라가 몽골 쪽과 화평 관계를 맺은 뒤 실제로는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북쪽을 상대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을 보면 그렇다.
▶에센, 타이슨칸 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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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이라트군의 명군격퇴]
에센은 누이동생을 타이슨칸의 정부인으로 삼도록 했다. 그래서 그 사이에 난 자식, 즉 자신의 외 조카를 다음 칸으로 올리려했다. 즉 칭기스칸의 후예이기도하지만 오이라트의 피를 이은 인물을 칸으로 삼아 영향력을 미치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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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영화속 전투장면]
▶오이라트 칸 탄생
타이슨칸을 제거한 에센은 동몽골 황족에 대한 대대적인 청소작업에 나섰다. 오이라트인을 어머니로 둔 황족 외에는 거의 모두 죽였다. 몽골사회는 대 혼란에 빠졌다. 사람만 제거된 것이 아니라 동몽골이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것을 몽땅 없애 버렸다.
이때까지 몽골이 가지고 있던 기록과 문서 그리고 족보 등도 거의 모두 사라져 버려 이후 몽골은 종족별로 새로운 계보를 만들어야하는 상황이 됐다. 이듬해 에센은 스스로 대칸이라 칭하면서 칸의 자리에 올랐다.
칭기스칸 가계의 핏줄이 아닌 오이라트 출신의 칸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칸의 자리를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에센이 반란을 일으킨 부하에게 곧 이어 살해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동몽골인들은 에센의 죽음을 텡그리, 즉 하늘의 뜻을 어기고 칸의 자리에 오른 데 대한 칭기스칸의 심판으로 여겼을 것이다.
▶다시 밀려난 오이라트
에센의 죽음으로 오이라트 제국은 쉽게 무너져 내렸다. 동몽골에서 영향력을 잃은 오이라트는 다시 서쪽으로 물러나 그들의 본거지로 돌아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서쪽 그들의 본거지에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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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일리강]
또한 지금의 카자흐스탄 지역에 있던 카자흐인들도 회오리바람처럼 밀고 내려온 오이라트의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서쪽으로 도망쳤다. 16세기 후반에 들어 이들 오이라트는 예니세이강 상류에서부터 일리강 계곡에 이르는 지역을 거의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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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석양의 몽골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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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준가르 분지의 목화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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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준가르 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