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bull)'만 있던 가상화폐 시장에 '곰(bear)'이 등장한다. 개인들이 비트코인을 사는 단 하나의 이유는 가격 폭등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선물 거래 시장은 다르다. 가격 하락에도 베팅할 수 있다. 하락에 대한 기대감(곰)과 상승에 대한 기대감(황소)이 서로 맞붙는 셈이다. 비트코인이 미국 선물시장에 상장됐을 때 미국의 전문가 다수는 "비트코인 가격 버블이 꺼질 것"이라고 전망한 이유다.
CBOE는 투자 과열을 막기 위해 1회 거래한도를 제한하고 가격 등락폭이 10%를 넘으면 2분간, 20%를 넘으면 5분간 거래를 중단한다.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을 고려해 CME는 35%, CBOE는 40%에 달하는 거래증거금을 요구하고 있다.
선물거래의 가장 큰 특징은 가격 상승은 물론 하락에도 베팅할 수 있는 점이다. 미래의 가치를 사고 파는 행위인 선물 거래에서 투자자들은 상품 가격이 향후 오를지 혹은 내릴지를 점치고 쇼트(매도) 또는 롱(매수) 포지션을 취한다. 비트코인 가격 상승에만 베팅했던 투자자들이 선물 시장에서는 상승뿐만 아니라 하락에도 베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트코인이 선물 시장에 데뷔했을 때 월가의 일부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버블을 터뜨릴 기회"라고 점쳤었다. 블룸버그 등 외신은 일부 헤지펀드들이 하락 베팅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었다. 이들이 하락에 베팅을 하면 부풀 대로 부풀어 오른 거품이 터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는 현재 175개 정도로 추정된다.
당시 블룸버그는 "롱 포지션 즉, 사들이기만 했던 비트코인 시장의 쏠림을 줄여나갈 가장 유용한 방법은 '선물 시장'이다"는 내용의 글을 싣기도 했었다. 황소(활황)와 곰(위축)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효율적이고 안전한 가격을 찾아갈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전 세계적으로 가상화폐 가격이 내리막길을 걷자, 미국 시카고 선물거래소의 비트코인 1월물 선물 만기(1월 18)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시세차익을 얻기 위한 세력끼리 맞붙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선물 시장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더 큰 게 사실이다. 적은 거래량으로도 가격폭을 인위적으로 움직일 수 있어서다.
아울러 이러한 현상을 '제도권 편입'으로 보는 것은 과도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의 선물거래를 규제하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가 비트코인 선물을 허용한 것은 금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으로, 미국 정부가 비트코인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호현 경희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정부가 비트코인 선물을 허용한 사례는 없다"며 "미국도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자기 상품으로 거래를 하는 것인데, 이를 제도권에서 받아들였다고 생각하면 오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