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앞에는 한때 대공분실이라고 불렸던 건물이 있다. 걸어서 5분이 채 안되는 거리다. 9일 기준 오전 기준 관객 420만 명을 돌파한 영화 '1987'에서 대학생 박종철이 끌려간 곳이 바로 이곳이다. 영화의 일부 장면은 실제로 이곳에서 촬영됐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센터로 바뀌었지만, 검붉은 벽돌을 쌓아올린 육중한 외관은 그대로다. 박 열사가 고문을 받았던 509호실 또한 그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3평 남짓한 공간에 침대와 책상은 물론 변기까지 배치돼 있다. 한 켠에 놓인 욕조는 목욕이 아닌 물고문의 용도로 쓰였다.
건물 외형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5층 창문이다. 밖에서도 볼 수 있듯 대공분실 건물의 5층 창문은 매우 좁다. 5층에는 취조와 고문이 이뤄졌던 15개의 조사실이 위치해 있다. 조사실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동시에 피조사자가 창문을 통해 뛰어내리는 일을 사전에 막으려는 의도로 추정된다.
원형 계단 또한 건물의 중요한 특징이다. 피조사자들은 정문 현관을 통해 건물에 들어가지 않았다. 연행된 이들은 건물 뒷편의 전용 출입구를 통해 입장했다. 나선형 계단을 지나면 5층까지 한 번에 이어진다. 폭이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서 방향 감각을 잃은 이들은 공포에 잠식된다.
"요컨대, 이 건물은 외부에서 눈에 잘 띄지 않게 계획되어 있고, 행정 업무와 취조 업무를 분리하여 일반 행정직원과 피해자가 서로 마주치지 못하도록 동선을 분리하여 설계 되었으며, 5층의 고문 공간이 노출되지 않도록 특수하게 디자인된 창문이 전체 건물의 외관, 특히 전면 파사드의 비례를 해치지 않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설계 단계부터 건물의 용도를 다분히 의식한 것이라는 김명식 박사의 설명이다.
지난 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한 청원이 올라왔다. 경찰청 인권센터를 '인권기념관'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의 품으로' 추진단은 청원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은 '인권경찰로 거듭 태어난 경찰상을 과시하는 공간'으로 제한되기에는 그역사적 의미가 너무 크다"며 "전면 개방돼 시민과 자라나는 청소년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소중함을 배우는 전시·교육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혔다. 9일 현재 3700여명의 시민들이 청원에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