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사진 = 주원장 초상화]
▶ 부정적 요인 안고 출발한 明

[사진 = 주원장 효릉(남경)]
3년 간 유랑 걸식을 하며 지내기도 했다. 백련교라는 종교에 들어가 홍건적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출세의 길을 달리다 결국 천하를 평정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맨 밑바닥에서 가장 상층부에 올랐다는 점에서 그의 인생 역정은 대단하다. 하지만 출신 배경에 대한 이상한 열등감은 그를 광적으로 독재 권력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 것은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왔다. 어렵게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면 지난날을 소중하게 여길 법도한데 주원장은 그렇지 못했다.
▶ 어처구니없는 언론 탄압
문자(文字)의 옥(獄)이라는 불리는 언론 탄압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과거 자신의 신분을 떠올리게 하는 문자들을 정해 놓고 그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을 모독했다고 해서 가차 없이 사형에 처했다. 그 문자라는 것이 광(光) 독(禿) 승(僧) 생(生) 적(賊) 칙(則)과 같은 것이다. 光과 禿은 대머리, 즉 중의 머리를 의미하는 글자로 그가 떠돌이 중노릇하던 때를 야유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진 = 망나니 춤(명나라)]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얼마나 공포정치가 만연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가지 예로 들어 보았다.
▶ 칼바람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
주원장은 모든 권력을 자기 자신에게 집중시키면서 누구라도 권력을 넘볼 여지가 있는 사람은 그냥 두지 않았다. 가장 그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유능한 부하들이었다. 그래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자신의 측근부하들을 혼자만의 심증을 갖고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측근 호유용(胡惟庸)과 남옥(藍玉)을 제거하면서 여기에 연루됐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처형한 사람이 무려 5만 명에 이르렀다. 이를 두 사람의 성을 따서 호람(胡藍)의 옥(獄)이라 부른다.

[사진 = 명나라 무장]
▶ 금의위(錦衣衛) 통한 공포 정보정치
공포정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정보기관과 스파이 조직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독재자가 반드시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이 이 조직이다. 금의위(錦衣衛)가 명나라 특무기관의 이름이었다. 사법기관과 상관없이 거침없이 행동했던 이 기관이 곳곳에 심어 놓았던 스파이들이 야기한 참화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사진 = 마황후 초상화]
행정부인 6부도 자신이 직접 통괄했다. 완전한 원 맨 시스템이었다. 말하자면 지방의 군수까지도 자신이 정할 정도로 모든 업무를 관장했다. 그래서 본인은 서류더미 속에 묻혀서 지내야할 지경이었다.
▶ 자식도 믿지 못한 독재군주

[사진 = 자금성 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