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135] 대원제국은 어떻게 무너져 내리나? ①

2018-01-06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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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테무르 死後 미로의 대칸 행방화

[사진 = 대원제국 황후(카툰)]

1307년 1월, 병상에 누워 있던 대칸 테무르가 숨을 거두었다. 그에게는 테이슈라는 아들이 한 명 있었지만 테무르보다 한 달 먼저 요절했다. 후손을 남기지 않고 숨을 거둔 것이다. 13년 동안 대칸의 자리에 있었던 테무르는 병 때문에 치세 후반기부터 아예 정사에서 손을 놓고 지냈다. 그래서 국정의 실권은 황후 가운데 가장 서열이 높았던 부루간 카툰(황후)이 쥐고 있었다.

누가 후계자가 되느냐 하는 문제가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됐다. 그러나 이때부터 대칸의 자리를 놓고 시작된 혼란과 격변은 대원제국의 근간을 뒤흔들면서 결국 거대제국을 나락으로 밀어 넣는 출발점이 됐다.

▶ 흔들리는 대칸
이후 26년 간 대원제국의 대칸이 8명이나 바뀌는 어지러운 형국이 이어진다. 급속한 내리막길이 시작된 것이다. 무력한 황제를 제쳐두고 여인이 수렴청정 형식으로 전횡을 부리는 이른바 ‘여인천하’시대도 있었다. 형제가 대칸의 자리를 놓고 죽고 죽이는 골육상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7살짜리가 대칸의 자리에 올라 43일 만에 숨지는 사례도 있었다.

1,328년부터 5년 동안은 6명의 대칸이 등장해 평균 재위 기간이 1년도 못되는 상황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만 놓고 봐도 대원제국의 정치 환경이 얼마나 어지러웠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거대한 세계제국도 짧은 기간 동안에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이처럼 극명하게 보여준 역사도 드물 것이다.
 

[사진 = 시집가는 몽골신부]

짧은 기간 동안 여러 명의 대칸이 등장하는 이 과정은 혼란스럽다. 특히 생소한 이름의 대칸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이 반복되고 툭하면 일어나는 쿠데타가 상황을 이해하는 것을 복잡하게 만든다. 상황을 이해하고 읽어 내려가는 데 다소 인내심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생략하고 지나가기는 개운치 않다. 최소한으로 줄여서 흐름을 간추려 보자.

★ 쿠빌라이 이후의 대칸
▷ 쿠빌라이 (世祖) 1260-1294
▷ 테무르 (成宗) 1294-1307
▷ 카이샨 (武宗) 1307-1311
▷ 아유르바르와다(仁宗) 1311-1320
▷ 시데발라 (英宗) 1320-1323
▷ 이순 테무르 (泰定帝) 1323-1328
▷ 아리기바 (天順帝) 1328
▷ 코실라 (明宗) 1329
▷ 톡 테무르 (文宗) 1329-1332
▷ 이린지발 (寧宗) 1332
▷ 토곤 테무르 (惠宗, 順帝) 1333-1370

▶ 여인 힘겨루기로 시작된 몰락
몽골제국의 몰락은 여인의 힘겨루기로부터 시작됐다. 테무르가 자손 없이 죽었으니 가장 대칸의 자리에 가까이 가 있었던 인물은 테무르의 죽은 형 다르마발라(答剌麻八剌)의 두 아들이었다. 카이두와의 전투에서 맹위를 떨친 카이샨((海山)과 그의 동생 아유르바르와다(愛育黎拔力八達)가 바로 그 두 아들이었다.
 

[사진 = 안서(安西)시가지]

그런데 테무르 대칸 후반기부터 실권을 잡고 있었던 부루간(卜魯罕)카툰은 자신의 지위를 잃고 싶지 않았다. 하나 있던 아들이 남편 테무르보다 한 달 먼저 죽으면서 아들이 없어진 그녀는 먼데서 후계자를 찾아냈다. 서역에 있던 안서왕(安西王) 아난다가 바로 그였다. 부르간은 아난다에게 급히 대도로 들어와 대칸의 자리에 오르라는 밀지를 보냈다.

안서왕 아난다는 쿠빌라이의 세째 아들 망가라의 둘째 아들로 대칸 자리에 한발 건너 있었던 인물이었다. 여기에는 부루간과 카이샨 형제의 어머니 다기(答己)사이에 여자들끼리 엉킨 감정의 깊은 골이 크게 작용했다.

▶ 부르간의 견제-배척당한 다기 모자

[사진 = 다기 가툰]

다기는 미인이 많기로 이름난 몽골 동부의 옹기라트 출신이다. 칭기스칸의 어머니 호엘룬과 부인 부르테가 바로 이 옹기라트 출신이라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쿠빌라이의 부인 차브이 역시 옹기라트 출신이었고 쿠빌라이의 장남 칭킴의 부인 코코친도 옹기라트 출신으로 이들은 옹기라트부를 중심으로 뭉쳐진 궁정 귀족들이었다.
 

[사진 = 부르테(칭기스칸 부인)]

[사진 = 호엘룬(칭기스칸 어머니)]

그런데 테무르의 부인 부루간 카툰은 그래도 이름 있는 바야우트 가문 출신이었다. 그래서 이들 궁정 귀족의 힘을 견제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대칸 테무르는 형 다르마발마가 일찍 죽은 뒤 형수의 아름다움에 반해 자신의 후궁으로 삼으려 했다. 형이 죽은 뒤 그 아내를 취하는 수혼제(嫂婚制)는 유목민 사회에서 보편화된 사회 관습이어서 별 문제가 아니었다.

형수를 취하게 되면 조카 두 명을, 즉 카이샨과 아유르바르와다를 의붓아들로 얻게 되니 후계자가 없는 테무르에게는 더 없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부루간 측에서 보면 다기가 들어오는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대칸은 아름다운 다기에게 빠질 것이고 그 아들이 대칸의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면 자신은 다기의 아래서 지내야 하는 치욕을 견뎌야 했다.

그래서 테무르가 병상에 있는 동안 자신의 아들인 테이슈(德壽)를 후계자로 내세우고 정리 작업에 나섰다. 다기의 큰아들 카이샨은 우선 몽골지역의 최전선으로 보내 버렸다. 다기와 둘째 아들 아유르바르와다는 하남지역으로 사실상 유배를 보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이 먼저 죽어 버리자 차선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아난다를 불러 대칸에 올리려 했던 것이다.

▶ 무위로 끝난 대칸 옹립
하지만 일은 부루간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서역에 있던 아난다가 대칸이 되는 것은 중앙 관료들에게는 뜬금없는 일이었다. 느닷없는 인물이 즉위를 하게 되면 기득권을 위협받을 것을 우려했다. 더욱이 아난다가 이슬람교도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비밀리에 하남에 있는 다기의 아들 아유르바르와다의 옹립을 추진했다.

그리고 쿠데타를 일으켜 부루간과 아난다를 체포하면서 아유르바르와다 정권이 출범하는 듯 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타이 서쪽에 가 있던 아유르바르와다의 형 카이샨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다기는 큰아들 카이샨에게 사자를 보내 아우에게 제위를 양보할 것을 권했다.
"너희 형제 둘 다 내가 낳았으니 어찌 멀고 가까움이 있겠느냐. 다만 음양가가 말한 운명의 장난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하는 것이 사자가 전해준 말이었다.
 

[사진 = 몽골 샤먼(무당)]

점쟁이가 동생을 대칸으로 점지했다는 얘기였다. 카이샨은 심복인 캉글리 톡토(康里 脫脫)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한 뒤 반격에 나서기로 결론을 내렸다. 어찌 점쟁이의 말로써 종묘사직의 의탁할 곳을 농단할 수 있겠는가? 이는 일을 맡은 신하들이 간사한 꾀로써 근본을 흔드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 카이샨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카이샨은 정예병 1만기를 거느리고 대도(大都)로 진군했다고 원사(元史) 캉글리 톡토 열전이 기록하고 있다. 용맹한 젊은 무장으로 카이두와의 전쟁에도 참여해 이름을 떨쳤던 카이샨은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몽골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카이샨은 열광적인 환영 속에 대도로 진군하고 있었다.

당연히 곤혹스러워진 것은 동생 아유르바르와다와 어머니 다기 그리고 쿠데타를 주도했던 관료들이었다. 그들이 내린 결정은 카이샨을 환영한다는 것이었다. 억울하지만 대적한다 해도 승산이 별로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대도의 인사들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상도까지 마중 나가 카이샨 일행을 맞았다.

▶ 쿠데타에 좌절된 역사 발전

[사진 = 카이샨(武宗)]

1,307년 5월 상도에서 열린 쿠릴타이에서 카이샨은 일곱 번째 대칸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바로 무종(武宗)이다. 오랜만에 전체 몽골인의 지지를 받은 대칸이 탄생한 것이었다. 카이샨은 몽골인들의 기대에 부응해 모든 면에서 제국을 안정시켜 나갔다. 동서의 연결도 이때 가장 안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정치, 경제, 문화, 기술, 종교, 사상 등 모든 분야의 발전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길지 못했다. 1,311년 새해, 대칸에 오른 지 3년 반 만에 카이샨은 31살의 젊은 나이로 돌연 사망한다. 원사에서는 카이샨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후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다음 기회를 기약했던 무리들이 카이샨을 암살한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사실상 쿠데타에 의해 다시 상황이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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