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12/27/20171227171648829457.jpg)
가연성 외부마감재로 순식간에 불길이 번졌다. 불법 주차로 소방차 진입이 지연돼 화를 키웠다. 대형 화재 사고의 똑같은 문제점은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사고가 날 때마다 '땜질식'으로 안일한 대처를 해온 결과 이번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도 '대참사'를 불러일으켰다.
소방당국은 인명 피해가 컸던 이유로 폭 6m 도로 양쪽에 있던 불법 주차를 꼽았다. 제천 화재 사고에서 소방차는 신고 접수 7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소방당국의 사다리차가 현장 진입로에 세워진 불법주차 차량 탓에 먼 거리를 우회하거나 견인차로 차량을 치우느라 30분 이상 지연됐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27일 현재 국회에는 소방차 주차구역 의무설치, 소방관들의 현장 판단이 존중되고 보호될 수 있도록 소방관의 부담을 덜어주는 개정안 등이 계류 중이다. 하지만 관련 법안들은 여야의 쟁점 법안에 밀려 단 한 번도 논의 조차 되지 못했다. 따라서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온 "소방차가 불법 주차 차량을 손상하고 출동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시물은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 의정부 화재 당시 입법조사처 "주차문제 해결" 1순위 꼽아
불법 주차된 차량에 길이 막혀 소방차 출동이 늦어지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2015년 1월 10일 발생한 의정부 화재 사고에서도 불법 주차 문제는 도마 위에 올랐다. 소방차는 119에 첫 신고가 들어온 지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아파트 입구 길 양쪽에 불법 주차하고 있던 차량 20여 대를 밀어내느라 소방차는 10분 가까이 지체된 뒤에야 진입할 수 있었다.
의정부 화재 사고를 두고 대다수의 전문가는 '주차 문제'를 꼽았고, 이를 해결하려는 방안에 관심이 쏠렸다. 화재가 일어난 건물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서민 주거난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도시형 생활주택'인데 부대시설 설치기준, 주택의 외벽 배치 시 도로 및 주차장 간 2m 이상 떨어진 거리 확보 규정 등을 완화했다. 이에 2013년 5월 31일 이전에 건축허가를 받아 상업지역과 준주거지역 내 건설되는 원룸형 주택의 경우 주택연면적 기준으로 120㎡당 1대만 설치하면 되도록 규정돼 주차난이 심각하며, 이는 화재 발생 시 초기 진압과 인명 구조 '골든타임'을 놓치는 주 원인으로 작용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당시 의정부 화재 사고 직후 '도시형 생활주택의 현황과 개선과제'라는 주제로 도시형생활주택의 주차장 확보기준을 일반 아파트 수준으로 상향하고, '주차장 수급실태조사'와 '주차환경개선지구 지정제도'를 활용해 주차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입법조사처는 "단지 내 주차장 부족은 입주자 차량의 진입·인접도로 내 불법주차를 유발하고 소방차 및 구급차 등의 단지 내 진입을 막아 긴급사태 수습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국민적인 관심이 쏠리자 당시 국민안전처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소방서가 신고를 접수하면 차량 견인 업체와 함께 출동해 방해되는 주차 차량을 견인 조치하도록 소방기본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번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23일 제천 화재현장을 방문 한 후 2015년 의정부 화재 사고를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정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을 활성화시킨다며 건축기준, 국민안전과 직결된 규제를 대거 완화했다"면서 "건물 진입도로 폭을 6m에서 4m로 줄이고, 10층 이하 건물에는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불법 주차 문제와 관련해 "1m 간격으로 건물을 붙여 지을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하자 건물 간 거리가 좁아지고 세대수가 많아지면서 자연히 불법주차 문제가 발생한다"며 "충북제천 참사처럼 화재 등이 발생했을 때 소방차의 진입부터 화재진압, 구조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12/27/20171227172721401607.jpg)
서울 시내 소방차 진입 곤란·불가 아파트 77곳 현황. [사진=행정안전위원회 제공]
◆ 사고 때만 바짝 '관심', 평소에는 낮잠자는 관련 법
불법 주정차는 시민들의 부족한 의식도 문제지만, 관련 법 제도 정비는 더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날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문제점 해결을 위한 개정안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현재 이 법안들은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긴급 차량의 출동을 방해하는 운전자나 차량 소유주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법안은 9개월째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김영춘 농림해양수산식품부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절인 지난 3월 발의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개정안은 소방차 등 긴급 차량의 통행을 방해할 경우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곳을 '주정차특별금지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주정차특별금지구역은 △교차로 가장자리, 도로의 모퉁이 주변 5m △버스정류장 및 주변 10m △화재경보기 주변 3m △소화전 등 소방용품 주변 5m로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개정안은 △주정차특별금지구역의 정차 또는 주차 금지의무를 위반할 시에는 일반적인 정차 및 주차 금지에 비해 과태료를 2배 이상으로 부과·징수 △시장 등이 주정차 특별금지구역에 대해 주정차금지표지를 설치·관리하고, 범칙금·과태료 금액을 함께 표기 △시장 등은 '주차장법'에 다른 주차장특별회계가 설치된 경우 주·정차 금지 표지'를 설치·관리하는데 필요한 비용에 주차장특별회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전문위원실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청은 '주정차 특별금지구역'으로 정한 장소가 다른 장소보다 사고유발 가능성이 크다고 볼 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개정안에 부정적인 만큼 논의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대표 발의한 일정규모 이상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 주차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내용의 '소방기본법 개정안' 역시 행안위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 개정안은 정당한 사유 없이 구역에 차를 주차한 사람에 대하여 2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행안위 수석전문위원실에선 국민안전처 자료를 편집해 '서울 시내 소방차 진입 곤란 아파트 현황(단위:단지)'를 77곳을 공개하며 법안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전문위원실은 77곳 각 아파트에 소방차가 진입하기 곤란한 사유도 꼽았는데, 그 가운데선 '상습불법주차'가 가장 많았으며 이외 좁은 진입로, 차단기 설치로 공간 부족, 고지대 급경사로 인한 특수차량 진입 곤란 등이 있었다.
제천 화재 사고 후 소방관들의 현장 판단이 존중되고 보호될 수 있도록 하는 관련 규정도 소관 상임위에 머물러 있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4일 국가가 소송 대행인이 되고, 소송 내용을 판단하는 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하자는 내용의 '소방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구조 활동 중 발생한 피해에 대해 소방관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다. 소 의원은 26일 CBS라디오에서 "그동안에는 소방관들이 뭔가 피해를 줬다 하면 그 피해에 대한 소송을 소방관 본인에게 물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여야의 쟁점 법안이 아니라는 이유로 밀려 있던 법안 처리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촌각을 다툴 때는 불법주차 차량을 부수고 화재 진압 장비를 투입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달라"고 당 정책위원회에 당부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소방차 등 긴급 자동차의 통행을 막는 불법 주차 문제 개선 위한 도로교통법 개정안, 소방차 전용주차 구역을 의무화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안 등 현재 국회 계류된 소방안전시스템과 관련된 법안의 처리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