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화 감독의 말처럼 차태현(41)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호오(好惡)가 가장 적은 배우다. 두 아이의 아빠지만 여전히 소년의 미소를 가진 그는 따듯하고 친근한 매력으로 대중들을 사로잡아왔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관객의 마음을 파고들고 감성을 끌어내는 것. 이는 차태현의 장기이자 그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20일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감독 김용화)는 차태현에게 안성맞춤인 작품이다. 저승에 온 망자가 그를 안내하는 저승 삼차사와 함께 49일 동안 7개의 지옥에서 재판을 받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 속에서 차태현은 19년 만에 나타난 귀인 김자홍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자홍은 정의로운 망자지만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가슴 한켠에 슬픔을 지니고 있는 인물. 차태현의 인간적 매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역할이자 그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낮은 채도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차태현은 자홍의 인간적인 면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전하곤 했다. 그만큼 자홍은 인간적이고 관객들의 공감을 사야 하는 캐릭터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감독의 말을 빌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호불호가 적은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어휴, 아니에요. 그런 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하하하. 다만 시나리오를 받으면서 ‘아, 나는 자홍 역이겠구나’ 생각했었어요. 삼차사는 생각도 안 했고 남는 게 자홍 뿐이더라고. 다만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 원작만 본 상태에서는 ‘평범한 자홍이 과로에 술을 먹다 죽었는데. 연기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밋밋하지 않을까?’ 걱정했었죠. 드라마라면 평범한 게 강점일 수 있는데 영화로는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보니 완전히 바뀌어 있었죠.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소방관인 자홍의 설정이 좋았던 것 같아요.”
차태현은 줄곧 ‘착한 영화’ 그리고 인간적 매력을 가진 인물들을 연기해왔다. 그는 하고 싶은 역할과 할 수 있는 역할 사이에서의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역할은 많이 들어오는 편이 아니에요. 반대로 너무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들어오는 역할도 있고요. 그런 건 도저히 할 수가 없죠. 누가 봐도 내가 범인이거든. 하하하. 열에 아홉은 휴머니즘 장르의 영화들이 들어와요. 저 역시도 1년에 한 번씩은 그런 작품들을 찍고 싶고요. 결과가 다 좋을 순 없죠. 누구나 직업이 있듯 이것 또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비슷해지는 면이 있는 것 같아서 남들이 확 느끼진 못해도 그 안에서 달라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신과 함께’는 차태현에게 어떤 도전이었을까? 그는 “캐릭터보다는 처음 경험하는 것들에 대한 욕심”이 더 컸다고 털어놨다.
“1부와 2부를 동시에 찍는다는 점이나 그린매트에서 촬영하는 등 시스템적으로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캐릭터보다 이런 경험들에 더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1년 스케줄을 통으로 비워두고 영화를 찍었는데 당연히 저는 한편 값을 받았거든요. 제작사 쪽에서는 아주 고마워하더라고요.”
그의 말대로 ‘신과 함께’는 여러 부분에서 배우들과 감독에게 ‘도전’을 안겨준 작품이다. 차태현은 그린 매트·CG 촬영에 관해서 “드라마 ‘전우치’ 할 때 장풍을 많이 쏴봐서 괜찮다”며 여유롭게 웃기도 했다.
“삼차사들이 허공에 칼싸움하는 걸 보면서 ‘쟤들 얼마나 민망할까?’ 싶었죠. 하하하. 저도 ‘전우치’ 할 때 그런 기분 많이 느꼈거든. 삼차사와는 달리 저는 몸에 닿는 게 많았으니까 상상을 하고 감독님과 이야기할 것이 많았었죠.”
제아무리 ‘전우치’로 단련이 되어있다지만 차태현에게도 ‘현타’(현구 충족 이후에 밀려오는 무념무상의 시간이라는 뜻의 신조어. 현실자각타임의 준말)이 오는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멧돼지에 물리는 장면에서 약간? 하하하. 굉장히 힘들어요. 끝나고 한숨이 나와. 내가 잘 할 건지 모르겠고. 멧돼지 역할 한다고 쫄쫄이를 입은 CG팀 막내가 달려오는데 불쌍하더라고. 쟤도 막내니까 그렇겠지. 그 장면을 찍고 약간 그런 마음을 느꼈던 거 같아요. 기억에는 많이 남죠.”
숱한 ‘현타’를 이겨내고 차태현은 감정연기로 많은 관객을 울리고 또 웃겼다. 스크린 속 자신의 연기를 자평해달라는 부탁에 “CG 연기보다 한 자리에 계속 있다는 점이 더 어려웠다”며 연기적인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동선이 없고 단조롭잖아요. 남들은 다 움직이는데 나는 피하기만 하니까. 변화를 주긴 줘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게 감정신이었어요. 감정을 막 잡아야 하는데 상대방 없이 나 혼자 상상해야 한다는 게 어렵더라고. 다행히 동생 수홍(김동욱 분)과 어머니의 장면 편집본을 보고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었어요. 또 다행히 저는 어머니나 자식에 대한 감정이 더 친근하게 느껴져서 몰입하기가 좋았어요. 남녀의 이별 이야기는 공감이 잘 안 돼요. 너무 옛날이야기 같아. 하하하.”
감정을 체화해야 진심 어린 연기를 할 수 있다는 차태현. 그가 연기한 작품들과 캐릭터들이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차태현에게 다사다난했던 올해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그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며, 담담히 말을 이어갔다.
“말도 안 되게 제게는 재밌는 한 해였던 거 같아요. 연출도 해보고, 경험도 많이 쌓고요. 결과는 다 안 좋았는데…. 망했죠. 뭐 사실은. 하하하. 결과만 두고 보면 그런데 과정들이 너무 좋았어요. 어떤 추억이든 좋은 경험이 됐어요. ‘신과 함께’가 잘 마무리된다면 나름 버라이어티한 한 해였던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