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는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강철비’의 주인공 곽도원(44)을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북한 내 쿠데타가 발생하고, 북한 권력 1호가 남한으로 긴급히 넘어오면서 펼쳐지는 첩보 액션 블록버스터를 다룬 작품 속, 곽도원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곽철우 역을 맡아 열연했다. 가장 평범하고 가까운 인물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표현해내는 곽도원을 통해, 곽철우는 보다 가까운 인물로서 활약할 수 있었다.
“곽철우는 우리와 아주 가까운 인물이에요. 저와 가장 닮은 남자라고 볼 수 있죠. 그를 표현할 때 어떤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번뜩 ‘외로움’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핵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언제나 ‘땜빵’ 노릇을 하는 데다가 나약하고 또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을 가지고 있죠. 소시민인 거예요.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의 모습이 가장 많이 떠올랐고 그 부분을 (연기로) 표현하려고 했죠.”
“월급이 300만 원 조금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곽철우는 그걸로 위자료 주고, 월세 내고 공과금 내면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으로 생활하겠더라고요. 월급부터 아주 자잘한 것까지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지니고 있었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어요. 말도 안 되는 것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있죠.”
치열하게 인물을 파고드는 곽도원이다 보니 3개 국어에 능통한 엘리트 곽철우에 거리감을 느낄 때가 많았다고.
“외국어 대사를 하느라 죽을 뻔했어요. 전 외국 가서 음식 시켜 먹는 것도 안 될 정도로 외국어를 못 하거든요. 영어는 겨우 50여 개의 단어로 생활하는데 곽철우는 옥스퍼드대학을 나온 남자니까. 정말 식은땀이 나더라고요. 암기과목 외우듯 줄줄 외웠어요. 오죽했으면 제가 악몽까지 꿨겠어요. 꿈에서 ‘감독님 대사가 안 보여요…’하고 울먹거리고 그랬어요. 자다가 깨면 영어 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 외고, 중간에 끊기기라도 하면 다시 처음부터 외우곤 했죠.”
피나는(?) 노력 끝에 영어 대사를 외웠건만. 영어 선생님이 미국 발음으로 알려준 탓에 난항을 겪었다며 속풀이를 하기도 했다.
“아니! 나중에 보니까 곽철우는 옥스퍼드대학 출신이잖아. 영국영어를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 영어 선생님은 미국사람이었던 거죠. 하하하! 멘붕이 왔었죠. 결국, 타협을 해서 섞어서 하는 거로 마무리 지었죠.”
웃픈(웃기고 슬픈) 곽도원의 에피소드처럼 곽철우 역시 그와 비슷한 상황 속에 놓여있는 일이 많았다. 전체적으로 진중하고 무거운 드라마의 분위기 속, 유일하게 유머를 던지는 캐릭터기 때문이다.
“2시간하고도 30분 남짓한 시간을 마라톤 코스라고 생각한다면 중간 중간 음료수도 마시고, 쉴 수 있는 타이밍이 필요하잖아요. 누적된 피로를 풀어줘야죠. 코미디 연기가 사실 어려운 건데 편집을 잘 해주셔서 재밌게 나온 것 같아요.”
모든 칭찬을 스태프들에게 돌렸지만, 곽도원은 현장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며 곽철우를 보다 가깝게 느껴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든 것들이 많았죠. 문 뒤에 끼이는 장면이나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열창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에요. 사실 지드래곤의 ‘미씽 유’(Missing You)와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Fantastic Baby)의 저작권료를 지급했는데 곽철우 입장에서 도무지 와닿지 않더라고요. 상의 끝에 ‘판타스틱 베이비’가 ‘삐딱하게’로 수정됐죠.”
극 중 밀폐된 차 안에서 곽철우가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열창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도 꼽힌다. 이 명장면이 곽도원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는 소식에 “다른 곡도 많은데 왜 하필 ‘삐딱하게’였느냐”고 묻자, “전도연 씨의 애창곡”이라며 또 한 번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삐딱하게’는 전도연 씨의 애창곡이에요. 전 그때 노래방에서 처음 들었거든요. 나중에 다시 들어보니까 곡이 너무 좋은 거예요. 똑같이는 못 해도 입에 붙고 부를 수 있겠더라고! 거기다 가사도 이혼당한 40대 남자가 술 먹고 술기운에 부를 수 있을 것 같고. 하하하. 감독님이 선택해주셔서 다행이었죠.”
영화 ‘강철비’는 그의 전작 ‘변호인’과 마찬가지로 메시지가 강한 작품이다. 인지도가 높은 배우로서 쉬운 선택만은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예술을 추구하는지, 상업을 추구하는지 아직 저는 제 포지션을 모르겠어요. 다만 배우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짐작은 하고 있거든요. 제가 연극을 할 때 선생님께서 ‘배우는 무정부주의자여야 하고 또 회색이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어떤 이야기든 자기가 부당하다 여기는 것을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하고, 세상을 깔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죠.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예요. 저는 정치적 색깔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저 역시 동의하기 때문에 작품을 시작한 거예요. 배우로서 작품의 눈과 입, 몸이 되어 표현하고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에 더 큰 호기심을 가지고 있어요.”
작품을 통해 세상의 눈과 입, 몸이 되는 배우 곽도원.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과 다른 또한 자신과 같은 배우 정우성을 만나게 됐고 그에게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되었다고 털어놨다.
“(정)우성이는 죽을 것 같이 열심히 사는 친구예요. 영화의 매 장면을 죽을 것처럼 연기하죠. 그게 존경스럽고, 멋있어요. 그를 통해 많은 걸 배우기도 하고요. 거기다 연기에 접근하는 방식 역시 비슷하기 때문에 연기 호흡은 두말할 것 없이 좋았어요. 상의할 필요 없이 캐릭터에 완벽하게 젖어 즉각적으로 대처하죠. ‘아수라’ 때부터 느꼈지만 이번 ‘강철비’는 할 때마다 다르게, 즉석에서 연기를 맞춰갔어요. 테이크마다 감정이 미묘하게 다른 걸 느끼면서 연기하는데 어찌나 행복하던지.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했죠. 정말 무서운 건 이런 감정이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거예요. 많은 분이 케미스트리가 좋다고 하시는데 현장에서의 좋은 기운이 화면에 그대로 담겼다고 생각해요. 배우의 눈짓, 손짓 하나에 감정이 실리는 걸 관객들을 바로 캐치하는 거예요. 그것에 공포와 경이를 느껴요.”
1시간가량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번 작품에 대한 곽도원의 뜨거운 열정과 애정은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었다. 내내 애정 어린 말투로 작품을 어루만지던 그는 “12월 개봉작 중, ‘강철비’만의 강점을 꼽아달라”는 말에도 망설임 없이 답변을 이어나갔다.
“‘1987’은 있었던 일이고, ‘신과함께’는 판타지잖아요? 우리는 딱! 그 사이에 있는 작품이죠. 근 미래에 있을 법한 이야기! 거기다 따듯한 웃음도 있잖아요. 하하하! 충분한 차별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각자 다른 성격의 이야기들이 개봉을 앞둬서 한편으로는 참 기뻐요. 비슷비슷한 영화가 아니라 관객의 취향대로 고를 수 있는 영화니까요.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어서 관객들에게도 선물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우리 영화는 ‘따듯한 부분’이 있다는 걸 강조해주세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