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이 10여년간의 완화 정책을 뒤로하고 내년께 최소 한 번 이상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서구 중앙은행의 긴축 방침에 일본은행까지 가세하면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져온 양적완화 정책이 마무리 수순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이하 현지시간) 내년 일본은행이 기존의 완화 정책을 마무리짓고 최소 한 차례 이상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시장은 예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가 취임한 이후 최근 5년에 걸쳐 총 4조 달러(약 4350조원)를 투입했고 최초로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는 등 급진적인 실험을 단행했다"며 "2018년을 기점으로 통화 정책에 대한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행이 조만간 출구 전략을 마련할 것이라는 관측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한때 80조엔에 달했던 일본은행의 국채 매수 규모가 최근 1년간 60조엔으로 축소되면서 테이퍼링(점진적 자산 축소) 신호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당시 구로다 총재는 일본은행의 10년물 국채 수익률 목표가 '제로'라며 당분간 10년물 국채의 금리에 집중하기로 했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구로다 총재가 지난달 스위스 취리히 대학에서 연설을 통해 "저금리가 은행업계의 수익을 해치고 완화정책의 효과를 훼손할 수 있다"며 초저금리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시장의 반응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무라증권의 수석 일본금리 전략가 마쓰자와 나가는 "이 연설은 금리 인상을 위한 포석"이라며 "구로다 총재가 내년 4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2기 연임을 구상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일본은행이 시장 예상보다 빨리 긴축에 나설 경우 엔화 가치를 끌어올려 글로벌 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일본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신흥시장 통화를 매수한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가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엔화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이 감소할 수 있는 탓이다.
최근 회복 기미를 보였던 소비자 심리도 위축될 수 있다. 현재 일본의 인플레이션 상승률은 최근 0.8%에 그쳐 일본은행 목표치인 2%에 한참 못 미치는 상태다. 당초 일본은행은 지난 2013년 2년 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달성하겠다고 밝혔으나 최근에는 2019년까지 연기하기로 했다.
일본은행의 1차 금리 인상이 이뤄질 시점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리고있다. 세키도 다카히로 도쿄미쓰비시 UFJ 은행 전략가는 "이르면 1분기에 10년물 국채의 목표 금리를 상향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 기점인 '하반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전문가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또 10년물 국채의 목표 금리가 기존 제로에서 0.2~0.3%로 상향 조정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이후 상업은행들이 중앙은행에 맡기는 예금에 매기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종결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시장 전망대로 일본은행이 긴축으로 돌아선다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0년 만에 완화 정책을 종결짓는 것이다. 일본은행 안팎에서는 정확한 입장 표명을 하지 않은 상태지만 현재와 같은 초저금리가 계속 유지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한편 오는 20~21일 예정된 통화정책결정회의에서는 기존 완화 정책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재 일본은행이 지정한 기준금리는 -0.1%로, 10년 만기 국채 금리 수익률 목표도 현재의 0%대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국채 매입 속도도 연 80조엔 규모의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