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인 서무귀가 웬만해서는 웃지 않는 위(魏)나라 임금을 기쁘게 해주자 신하가 그 이유를 물었다. "임금이 그동안 진정한 말이나 웃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는데, 아첨꾼들과 달리 가볍지만 진실한 얘기를 들려주니 좋아하더라"고 그는 답했다. 외진 곳에서 헤맬 때 들리는 사람 발자국 소리처럼.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 져서 소리하니,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혼자 앉아서', 최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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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정권 시절 간첩누명을 쓰고 독방에서 지내야 했던 어느 작가는 뒷날 이렇게 말했다. "가장 그리운 것이 사람이었다. 어떤 흉악범도 좋으니 같이만 있게 해주었으면 했다." 외로움은 이처럼 지독하다. 도시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살지만 사실은 각자 독방에 살면서 ‘열릴 듯 닫힌 문’으로 눈길을 보내는 곳이다. 또 다른 빈 골짜기인 것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우리도 누군가에게 발자국 소리가 될 수 있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때 기다리지만 말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도 따뜻한 선물이 될 것이다. 그때 발자국 소리, 즉 족음(足音)은 바로 복음(福音)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