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남해 '독일마을', 파독간호사·광부들 그리움 종착역 됐으면"

2017-12-22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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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독 간호사 출신 석숙자 여사

뚝심 있던 삼척 탄광촌 소녀, 주저없이 독일행을 준비하다

빈곤했던 대한민국 살리기에 앞장섰던 파독 간호사 석숙자 여사. [사진=기수정 기자]

 

꽃다운 나이, 낯설기만 한 타국에서 보낸 나날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됐다. 그 피와 땀은 오늘날 우리가 좀 더 편하게, 그리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세계 경제순위 11위. 세계 국가 명목상 국내총생산(GDP) 1조5297억원. 현재 우리나라가 차지하는 경제적 위치는 훌륭하다. 이 귀한 열매는 이들의 노력이 뒷받침됐기에 맺을 수 있었다. 

'젊은 시절을 타국에서 땀과 눈물로 보낸 이들'? 바로 파독 간호사와 파독 광부다.

1973년,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되기 위해 과감히 독일로 떠났던 석숙자 여사(70)를 지난달 남해에서 만났다.

경상남도 남해의 '독일마을'에 둥지를 틀고 있는 석 여사는 지난 세월 독일에서 겪은 이야기, 힘겨웠던 세월에 대해 담담히 얘기했다. 우리의 아픔에 대해, 독일에서 젊은 세월을 보낸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의 삶에 대해···. 

석 여사는 이곳 남해를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소망을 이루게 한 그리움의 종착역"이라고 표현했다.

독일 유명 축제를 벤치마킹해 독일 옥토버페스트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는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나날이었지만 이 역시 그리움이 되고 소중한 추억이 됐다"며 "제2의 고향 독일에서 청춘을 바친 분들이 이곳에서 여생을 편안하게 보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빈곤의 대한민국 살리려 독일행을 결심하다 
 

파독 간호사 석숙자 여사는 현재 남해 독일마을에 거주하며 파독 간호사로서의 삶, 그리고 독일마을에 대해 알리고 있다. [사진=기수정 기자]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는 빈곤의 나라였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 시절,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 '대한민국'은 굶주림에 익숙한 나라였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76달러(8만2770원)로 당시 태국은 220달러(23만9600원), 필리핀 170달러(18만5100원)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대한민국을 '회생 불가능 국가'로 인식했던 다수의 국가는 우리가 내민 도움의 손길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하지만 독일만이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었다. 

그렇게 필요한 자금을 독일에서 해결한 우리는 1963년부터 1977년까지 7936명의 광부를, 1960년부터 1976년까지 1만1057명의 간호사를 각각 독일로 파견했다.

1973년 간호사로 독일에 간 석 여사는 작은 도시 라이힐링엔(Leichlingen)에 동료 5명과 머물렀다. 그 마을에 처음 발을 디딘 동양인이었다. 

이곳에서 석 여사는 기독교 계통의 양로원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다. 독일에 가기 전 독일어를 배웠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일일이 몸으로 부대끼는 수밖에요. 시체를 닦고 중환자를 수발하고···. 가장 힘들다는 허드렛일은 우리 차지였지요. 그렇게 6개월이 지나니 귀도 뚫리고 입도 터졌어요."

어린 나이에 낯선 독일 땅에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하니 서러움이 복받칠 때가 왜 없었겠는가. 그럴 때마다 석 여사는 '그래도 감사하자'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단다. 

온갖 어려움을 견디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석숙자 여사, 그리고 파독 간호사들의 진정성을 알게 된 독일인들은 이들에게 '코리안 에인절'이라는 애칭도 붙여줬다. 

◆코리안 에인절, 나라를 살리다

석숙자 여사의 독일 생활은 비록 눈물로 얼룩지긴 했지만 나쁘지만은 않았다. 

"한국 사람 특유의 붙임성과 친절 덕에 독일인들도 점점 우리를 좋아하기 시작했지요."

마을 축제 때는 한복을 차려입고 아리랑도 불렀다.

고향 생각이 날 때면 병원 앞 정원을 자주 거닐며 사색을 했다.

외롭고 힘들어도 최고의 위안은 역시 급여였다.

독일에서 파독 간호사가 받은 월급은 우리 돈으로 15만원. 당시 한국 월급의 10배였다.

"당시 한국의 8급 공무원 월급이 1만5000원이었는데 파독 간호사는 그의 10배에 달하는 15만~20만원씩을 받았어요. 그중 생활비 3만~4만원을 제외하고 모두 한국으로 보냈지요."

그때는 고국에 송금하는 것이 한국 간호사들의 최고의 미덕이었단다.

석 여사를 비롯해 파독 간호사가 1965년부터 1975년까지 고국에 보낸 송금액은 무려 1억153만 달러에 달했다.

외화 가득률이 100%에 해당하는 임금이라는 점과 1달러의 외화도 소중했던 당시 경제 상황에 비춰보면 이들의 땀과 눈물은 분명 한국 근대화의 초석이 됐다. 

석 여사는 "우리나라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준 독일에 대한 감사함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석 여사는 "무엇보다 독일인과 한국인을 똑같이 대우했다는 점이 가장 고맙다"면서 "독일에서 임신한 한국 간호사들은 1년을 쉬어야 했는데, 병원에도 손해고 독일이란 나라에 도움이 되지 않았음에도 우리에게 출산비용을 모두 지원해준 독일이 지금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 많은 세월, 그래도 지금은 추억···독일마을에 둥지를 틀다

석 여사를 비롯해 독일에 파견돼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한 독일 거주 교포들은 남해 독일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2001년 남해군은 산업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돼 한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독일거주 교포들의 정착을 위해 독일마을을 조성했다. 

지금은 독일 양식의 주택과 남해의 수려한 경관이 어우러져 여유로운 느낌이 물씬 나지만 독일마을이 조성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돌 무더기에 뱀까지 많은 황무지 중 황무지였단다. 

석 여사는 2002년 독일마을에 집을 짓고 로젠 하우스라는 이름도 붙였다. 남편 요셉은 독일에서 폐암치료 후 투병생활을 마친 후 남해로 왔다. 그렇게 2년이 지난 2004년 3월, 남편은 석 여사 옆에서 눈을 감았다. 

현재 독일마을엔 석 여사를 비롯해 독일에서 우여곡절의 수십 년 세월을 보낸 독일 교포 출신 2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청춘을 다 바친 독일에서의 시간은 비록 고생스러웠지만 그 또한 이들에게는 추억이 되었다. 이에 석 여사를 주축으로 남해에 둥지를 튼 교포들은 합심하여 마을에서 다양한 독일 문화 행사를 열고 있다.

독일 민속 축제인 '옥토버페스트'도 매년 10월 이곳에서 재현된다. 

독일마을 거주자들은 방문자들에게 독일 와인, 맥주, 소시지 등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들이 직접 독일 생활에서 불렀던 동요, 가요 등을 전하기도 한다.


※파독 간호사 석숙자 여사는? 

석숙자 여사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탄광촌, 강원도 삼척 도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주관이 뚜렷하고 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밀어붙이는 '뚝심'도 있었다. 

도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앞날을 고민하던 석숙자 여사는 어느 날 독일 간호사 파견에 관한 신문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주저 없이 독일행을 준비했다. 

물론 독일로 간다고 했을 때 이를 반기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석 여사의 어머니가 "가지 말라"며 눈물로 호소해도 소용없었다. 

'이건 팔려가는 게 아니라 꿈을 키우러 가는 거야!'라고 다짐한 석 여사는 서울로 올라와 간호학원에 다니고 세브란스 병원에서 실습도 마쳤다. 그렇게 3년간 고생한 후인 1973년 3월 18일, 석 여사는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30년간 독일에서 지냈다. 

그러던 중 고국에서 여생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한 석 여사는 2002년 3월, 독일마을에 집을 짓기 시작해 12월 짐을 옮겨 왔고, 독일에서 보냈던 지난날처럼 이곳 독일마을에서 또 다른 삶을 아름답게 가꿔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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