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진칼럼] 한·중, 당분간 실리적 관계 넘기 어려워

2017-12-13 16:00
  • 글자크기 설정
[강영진칼럼]

 

[사진=강영진 초빙논설위원]



한·중, 당분간 실리적 관계 넘기 어려워

문재인 대통령이 3박4일간의 중국 공식 방문일정을 시작했다. 사드 배치로 인해 냉각된 한·중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가장 큰 방문 목적이다. 여기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5호를 쏘아올리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북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과제다. 그런데 손님을 맞는 중국은 그다지 환영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최고 의전이 수반되는 국빈으로 초청해 놓고도 식사 대접조차 변변히 하지 않는다고 한다. 밥 한 끼 먹는 것이 큰일은 아니겠지만 손님을 불러놓고 그런 자세를 보이니 다소 뻘쭘하다는 느낌도 든다. 아니나 다를까 야당은 ‘저자세 외교’라며 진작부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중국이 초청까지 한 마당에 문 대통령을 홀대한다는 건 지나친 왜곡이라고 반박한다. 사드로 경색된 한·중관계를 풀어나가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실리적으로 접근하겠다는 뜻도 덧붙였다. 외교에서 ‘실리적’이라는 말은 상대야 어떻든 우리 목적만 제대로 달성하면 된다는 함의를 지닌 단어다. 청와대가 단어를 잘못 사용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한·중관계가 아직은 덜 풀렸다. 서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는 문제가 남아 있고 따라서 방중을 화려한 정상외교 행사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필수 절차'라고 설명하는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
사드 배치로 인해 양국관계가 경색된 지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중국이 한국을 상대로 ‘졸렬한 보복’을 시작한 지가 그렇게 돼 간다. 지난 10월 말 한·중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협상을 한 결과가 이른바 ‘3불 조치’다. 사드 추가 배치, 한·미·일 군사동맹, 미국 주도 미사일 방어(MD) 세 가지를 하지 않겠다고 한국이 공개 입장 표명한다는 데 양국이 동의한 것이다. 그 뒤부터 중국은 ‘입장 표명’을 ‘약속’으로 만들기 위해 온갖 꼼수를 써왔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중국 CCTV가 방영한 인터뷰도 그런 의도를 가지고 ‘불손하고 편파적인’ 질문과 편집을 했다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위야 어떻든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게 꼭 필요한 일인 건 맞는다. 대통령이 사상 최대의 경제사절단을 동반하는 건 우리 목적이 어디 있는지 잘 보여준다.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최대한 활성화함으로써 한·중관계를 사드 배치 이전 시기까지 혹은 그 이상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의도다. 말 그대로 실리적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사실 25년을 맞은 한·중관계가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라지만 그건 말뿐이었다. 실제로는 실리적인 관계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그런 관계가 사드를 계기로 ‘실리적이지도 못한 관계’가 됐을 뿐이다. 혹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방문길에 실리적인 관계를 넘어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되살리려는 뜻을 가졌다면, 아직은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듯싶다. 실리적 관계만이라도 제대로 다져두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한 나라를 국빈 방문하는 상황에서 이런 것들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색한 일이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이 빚어졌을까. 그건 과거의 외교 당국자들이 현실에 맞지 않는 포장에 주력했기 때문이다.
지난 세기까지 우리 외교는 한·미동맹에 ‘묶인’ 외교였다. 그 때문에 완전히 자주적이지 못했다. 아니 자주적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자주적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을지 모른다. 냉전시대 한·미동맹은 한국의 존립과 발전을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 버팀목이 마냥 공짜로 주어진 건 아니었다. 단적으로 베트남전 파병이나 심지어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기의 이라크 파병까지도 한·미동맹을 위해 마땅히 짊어져야 하는 대가였다.
그런데 외교당국자들은 이런 점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싫어했다.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우리를 지속적으로 미국의 식민지 내지 하수인이라고 비아냥거려왔다. 북한의 비아냥에 적극 동조하는 세력조차 국내에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외교당국자들은, 나아가 집권 세력은 외화내빈(外華內貧) 외교에 익숙해져 있다. 속 한쪽이 비어 있는 수레여서 요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북핵문제를 핵심으로 하는 한반도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고선 실리적 관계를 넘어서기 어려운 한·중관계를 말만 번지르르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포장한 배경이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는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하는 중이다. 여기에 중국은 미국과 지구 패권을 놓고 본격적인 경쟁에 나섰다. 지난 세기 힘없고 가난했던 한국이 한·미동맹을 절실하게 필요했다면, 힘도 돈도 어느 정도 생긴 지금은 어떤가. 한·미동맹이 한국의 자주성을 옭아매는 것은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동맹의 필요성 그 자체는 전혀 줄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동시에 중국과 실리적 관계를 말뜻에 부합하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로 끌어올리는 것도 필요하다. ‘줄타기 외교’란 이런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일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중국 방문길에 나선 문 대통령의 심기가 편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 대통령이 외국에서 활동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흔들어대는 건 국민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다만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들, 그리고 잔치에 끼어들어 한몫 보려는 정치인들이 상황을 정확히 보지 못하고 과도하게 나대는 일은 자제했으면 한다. 중국은 우리를 100년도 훨씬 전에 끝나버린 ‘조공국 관계’를 되살리길 바라는지 모르는데 마냥 맞장구치고 나서는 건 꼴불견이다. 젊은 시절 반미 운동을 업으로 삼았던 정치인들 몇 사람은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분위기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