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수칼럼] 과거보다 미래에 승부를 걸라

2017-12-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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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육정수 초빙논설위원]

[육정수칼럼]

과거보다 미래에 승부를 걸라

어떤 조직에서도 후임자는 전임자로부터 업무의 기본을 먼저 파악하고 인계받을 일을 챙기는 것이 순서다. 그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어 왔는지를 모른 채 일을 시작한다면 기초공사 없이 집을 짓겠다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전임자보다 더 낫다는 소리를 들으려는 욕심에 그의 잘못을 들춰내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후임자는 성공하기 어렵다.

정부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집권하자마자 과거 정부의 약점부터 찾아내 단죄하는 일부터 벌인다면 지지자들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새 대통령에 반대표를 던진 야당과 국민은 반발하기 마련이다. 과거 정부 고위공직자들이 무더기로 무리하게 소환 조사당하면 말할 것도 없다. 불행히도 지금 바로 그런 시기에 놓여있다. 과거 정부들도 예외는 없었지만 문재인 정부만큼 노골적인 정부는 없었다.

요즘 전 정부 고위직들이 잇따라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고 구속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심정이 아주 불편하다. 국정원 파견 검사와 소속 변호사가 ‘댓글사건 수사방해’ 혐의로 조사받다가 자살하는가 하면,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과 임관빈 전 국방정책실장이 구속된 후 적부(適否)심사로 석방되자 야당의원들과 ‘댓글부대’가 법관에게 ‘적폐’딱지를 붙이는 행태가 가관이었다. 법관의 양심에 대한 위협은 법치주의가 위험수위에 있음을 말해준다.

지난 6개월여 동안 청와대와 행정부, 사법부의 고위급 ‘코드 인사’가 거의 마무리되자 정부는 본격적인 ‘적폐수사’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검찰은 청와대 하명(下命) 사건을 비롯해 국정원, 국방부 등의 수사의뢰를 무더기로 받고 있다. 지방 검사들도 다수가 차출되어 수사에 가담해야할 정도이니 일반 민생사건들은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다.
전(前) 정부에 불만을 가졌던 청와대 입성자(入城者)들과 여당 의원들, 그 지지 세력은 적폐수사 대상을 골라내기에 안달이 났다. 돌아가는 양상이 인민재판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섬뜩하다. 인권이 보장되고 공정한 법절차에 의해 수사와 재판이 이뤄진다는 느낌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이런 수사로 과연 대통령이 야당 대표들에게 언급한 “개인에 대한 처벌이 아닌, 불공정한 특권구조 자체를 바꾸는” 적폐청산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오히려 앞으로 정권교체 때마다 극심한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부르게 되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1987년에 어렵게 쟁취한 민주화 및 평화적 정권교체의 수확마저 잃게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정치권과 시민 사회단체 및 각 분야 노조는 물론, 국민 모두가 보다 지혜로워져야 한다. 지금 정치권의 행태는 지나친 당권(黨權)경쟁과 집권 연장 내지 체제 변혁에만 집착하는 모습이다. 원한에 찬 정권교체와 정치 보복적 단죄가 거듭된다면 적폐청산을 통한 정치 발전은커녕 정부와 국가, 국민 모두를 패자로 만들뿐이다.

검찰은 끝이 보이지 않는 하명(下命)사건 수사를 놓고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전 정권을 겨냥한 적폐수사에 대해 불만과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이 주재한 몇 차례의 간부급 모임에서도 적폐수사의 문제점들이 지적됐다는 후문이다.

야당은 잇따른 전 정부 고위직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정치보복으로 규정짓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박상기 법무장관 등은 국정감사에서 적폐수사를 완화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결국 적폐수사는 정권의 의지대로 갈 데까지 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야 대결구도는 내년 6월 지방자치선거도 앞두고 있는 만큼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과도한 적폐수사 드라이브는 정치발전과 안정을 위해 하등 득(得)될 것이 없다. 정부는 과거에 대한 집착보다 미래를 보고 나아가는 화합과 타협의 정치로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이 정부는 임기 5년을 아무런 성과 없이 허송세월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뻔하다. 재집권은 말할 것도 없다.

앞으로 남은 임기 4년 반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실현하는 데만도 짧은 시간이다. 지금 이 정부는 정치, 외교, 안보, 경제, 교육, 노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과거 어느 정부보다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더욱이 전문직 인사들보다는 과거 운동권 경력자들이 다수인데다 그들이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정책의 시행착오가 어느 정부보다도 잦을 소지가 크다.

성경에도 있듯이 ‘남의 눈의 티보다 내 눈의 대들보를 먼저 보라’는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물론 이는 누구나 좀처럼 실천하기 쉽지 않은 명심보감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나라를 운영하는 위정자들, 그중에서도 대통령은 이런 자세로 국가를 운영해야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참다운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총리 및 장관직을 비롯한 고위공직 후보자들이 대통령의 지명을 받고도 상당수가 국회의 반대로 낙마하거나 무리하게 임명됐다. 이는 앞으로 두고두고 문재인 정부의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 정부가 오직 ‘촛불’의 지지만 믿고 매사를 밀어붙이면서 반대표를 던진 국민의 뜻을 외면할 경우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다.

지금 많은 국민이 적폐수사의 폐해와 파장에 대해 불안해한다. 과거 정부의 약점을 들춰내 새 정부를 돋보이게 하려는 속 좁은 계산보다 자신들의 장점과 강점을 최대한 살려 치적(治績)으로 보여주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포퓰리즘에 의한 당장의 인기보다는 미래의 긴 역사적 안목에서 엄정한 평가를 받겠다는 각오를 가져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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