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우연히 받은 한 미국 방송 기자의 질문이 강욱순의 인생을 바꿔 놨다. 그해 강욱순은 1996년에 이어 두 번째로 아시안 투어 상금왕에 올랐고, 후배 박세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 대회 US여자오픈에서 ‘맨발 투혼’의 감동을 선사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미국 기자는 당연히 한국에 골프 아카데미가 많을 것이라고 추정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질문을 생각하면 막막했고 답을 하지 못해 답답했다. 이 순간 강욱순은 또 다른 꿈을 꿨다.
아카데미를 만들기 위해 아카데미를 배웠다. 2003년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큐스쿨을 치렀을 때 강 대표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러 갔다. 큐스쿨을 보는 중간 중간 아카데미에 가 돈을 지불하고 레슨을 받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순위가 높은 아카데미 10곳을 모두 찾아갔다. 그가 경험한 미국의 아카데미는 특화돼 있었다. 교육 프로그램만 봐도 어떤 것을 어떻게 배울지 알 수 있었다. 이후 미국의 아카데미가 한국에 많이 들어왔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강 대표는 “너무 특화되다 보니 개개인의 ‘동물적인 감각’을 살리지 못했다”며 “개개인의 특징에 맞는 동작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십년 간 고민했던 강 대표의 생각들은 한국 골프의 미래가 자라나는데 자양분이 되고 있다. 프로 시절 국내에서 12승, 해외에서 6승을 거뒀던 강 대표는 현재 6명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회원 자격을 획득한 안지현, 박진하를 포함해 프로 선수는 3명이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제자들을 직접 레슨하고 나면, 회사 대표의 삶이 기다린다. 밀린 업무를 보느라 퇴근은 오후 9시, 오후 10시가 되기 일쑤다. 아카데미를 연 후 지금까지 쉬었던 날은 결혼기념일 단 하루였다. 강 대표는 “일하는 것이 즐겁고 보람차다”며 환하게 웃었다. 애주가인 그는 작년 3월 술도 끊었다.
만약 돈벌이를 생각했다면 아카데미를 열지 않았을 것이다. 강 대표는 아카데미 부문은 적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수익을 내기 위한 것보다는 세계적인 선수를 발굴하겠다는 목표가 강했다. 또한 일반 학생들이 어렸을 때부터 골프를 배울 수 있도록 안산시와 방과 후 프로그램 협약을 계획 중이다. 지난 8월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강욱순의 건강골프’라는 책도 출간했다. 선수 육성과 함께 골프 대중화에도 힘쓰고 있다.
골프 인생을 즐기며 사업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지만 승부사 기질은 여전하다. 지난 8월 한국남자프로골프(KPGA) 시니어 투어인 챔피언스 투어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강 대표는 “2등을 해서 기사가 났는데, 내년에는 꼭 우승을 하겠다. 12월에 제자들과 뉴질랜드로 전지훈련을 떠난다”고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