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리더에게 듣는다] 권위ㆍ서열 '한줄로 선 문화'가 포용성장 가로막는 요인

2017-11-1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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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원 OECD 한국대사, 한국경제 질적성장으로 변화하는 시기

4차 산업ㆍ고용 등 경제적 문제 우선 해결해야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진입장벽 낮추고 창의적 인재교육 필요

윤종원 OECD 한국대사는 한국경제가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기득권의 높은 장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윤종원 OECD 한국대사]


“새 정부의 소득‧혁신 성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집행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방향성만 제대로 유지한다면 지속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윤종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대사는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이같은 견해를 내비쳤다. 새 정부가 초기 아젠다 설정은 잘 했지만 앞으로 정책 입안이나 실행에서 일관된 방향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다.
윤 대사는 OECD 등 해외활동을 통해 글로벌 경제와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을 키웠다. 그는 한국경제 미래가 그렇게 암울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을 ‘빈곤국가’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다만, 체질개선에 대한 작업이 더딘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불합리한 기득권을 타파해서 우리 사회의 동맥경화증을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사는 “한국경제에 여러 가지 변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변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많아 진전이 더디다”라며 “권위와 서열중심 문화에서 탈피해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보다 세련된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계경제에 대해서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충격에서 벗어난 국가들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목 받는 OECD ‘포용적 성장’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저성장, 불평등 확대 등 문제가 지속되면서 OECD에서는 기존 성장위주 패러다임 유효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불평등이 심화되면 사회 불안은 물론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 하에 새로운 성장방식을 모색하기 위한 시도였다.

나엑(NAEC: New Approach to Economic Challenges)이라는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는데, 몇 년에 걸친 논의를 바탕으로 ‘포용적 성장’을 새로운 정책 틀로 제시했다.

윤 대사는 “포용적 성장은 성장 과실이 사회계층과 개인에게 공정하게 분배돼 후생이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성장을 의미한다”며 “성장의 최종 목적이 삶의 질 제고라고 보고 있으며 성장 과실이 공유될 때 안정적 성장이 지속될 것이라는 얘기다”라고 설명했다.

OECD 포용적 성장은 새 정부가 경제정책 핵심 축으로 제시하는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와 궤를 같이 한다. 성장과 분배 조화를 통해 모두가 잘사는 사회를 지향하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게 윤 대사의 관점이다.

그는 “새로운 아젠다는 정책을 통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입안하는지에 달려있다고 본다”며 “OECD는 거시경제는 물론, 노동, 교육과 스킬, 경쟁, 혁신,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추구하기 위한 정책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다는데 총수요와 총공급, 제도적 인프라를 아우르는 OECD에서의 정책논의에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새 정부 정책 프로그램을 마련할 때 OECD의 포용적 성장 논의동향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대사는 다년간 해외 경제자문기관에서 한국경제를 보다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키웠다. 현재 한국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사진=윤종원 OECD 한국대사]


◆“4차 산업‧고용 등 경제적 문제…지원보다는 체계 확립이 중요”

한국경제가 한 단계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 고용 등 경제적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도 내놨다.

OECD에서는 최근 ‘고잉 디지털(Going Digital)이라는 프로잭트를 추진 중인데, 4차 산업으로 인한 경제 전반의 영향력을 분석하고 고민하는 과제다.

우리나라에서 4차 산업혁명은 성장 동력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OECD는 기술혁신이 소득과 고용, 삶의 질 등 사회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응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게 윤 대사의 얘기다.

윤 대사는 “OECD 논의를 보면 우리나라 접근방식과 다소 차이가 있다”며 “OECD는 4차 산업혁명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 환경은 날아가는데 정책대응은 기어가는, 소위 ‘기술 4.0, 정책 1.0’ 괴리를 시정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기술혁신에 대한 대응도 한두 부처가 아니라 대부분 부처가 참여해 수평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가 눈여겨보고 참고해야 할 부분”이라며 “OECD는 이러한 논의결과를 종합해서 미래 전략과 포괄적인 정책대응을 담은 디지털 발전전략 보고서를 오는 2019년에 제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지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득권 진입장벽을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경직적인 정규직 노동시장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부분을 꼽았다.

윤 대사는 “우리의 경우 법률, 회계, 의료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업 진입장벽이 높아 그 분야에서 젊은이가 꿈을 키우는 것이 원천적으로 어렵다”며 “인구대비 변호사, 의사, 회계사 비율이 OECD 최저수준이라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진입장벽을 트는 한편 디지털화로 노동수요 변화가 빠른 만큼 창의적인 인재 교육, 평생교육시스템 구축 등 교육부문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노동시장 기득권을 줄이는 것도 개혁의 관건이다. 지나치게 유연한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 고용 안정성은 높여야 하겠지만 지나치게 경직적인 정규직 노동시장은 유연화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차별을 완화하고 노동자 권리 보호를 강화하는 한편 여성‧청년‧노인 등 취약계층 고용을 촉진시키기 위한 노동시장정책도 중요하다는 소신을 보였다.

윤 대사는 “그리스, 스페인의 경우 청년 2명 중 1명이 실업상태이다. 청년실업이 장기화되면 인적 역량이 소실되고 경제전체의 성장잠재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며 “OECD는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쉽게 편입될 수 있도록 진입 장벽을 제거하고 스킬 미스매치해소, 평생교육 등 인적역량을 높이는 노력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변하는 시기

윤 대사는 지난 2012년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로 활동하던 당시부터 약 5년간 해외에서 한국경제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바라봤다. 그만큼 우리나라 거시경제 전문가 중 최고 수준으로 꼽히는 인물 중 하나다.

이런 그가 지금껏 외부에서 바라본 한국경제는 어떤 모습일까. 일단 해외 경제전문가들은 한국경제가 지난 반세기동안 유례없는 경제적 고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거둔 부분에 긍정적 찬사가 가득하다.

다만 소득 3만 달러 단계까지 성공적으로 진입한 이후 고성장 신화가 앞으로 지속될지 여부에는 물음표를 던진다. 요소투입 위주의 성장방식에서 벗어나 생산성 제고에 기반을 두 선진경제로 전환이 성공을 거둘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사는 “그간 우리나라는 경제사회 발전과정에서 압축 성장은 빈곤을 해소하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했지만 분배와 환경 악화, 기득권 중심 권위주의적 사회구조 등 많은 문제도 노출됐다”고 짚었다.

이어 “우리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탈바꿈하려면 성장과 분배, 삶의 질이 함께 가는 사회를 지향하면서 그동안 축적한 경제적 성과를 이용해서 사회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권위와 서열중심 문화에서 탈피해 개방적이고 합리적인, 보다 세련된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는 창의와 경쟁을 억압하고 있는 진입 규제를 시정하고 공정경쟁 촉진, 혁신적인 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뒤처지는 계층을 배려하고 이들의 경쟁력을 높이도록 돕고 뒤떨어진 사회안전망 보강에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함께 인적자본 질을 높이기 위한 창의적인 인재교육과 일자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평생교육시스템 구축도 제시했다.

한국경제가 발전하려면 ‘삶의 질’ 개선이라면 명확한 방향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뜻도 내비쳤다. OECD는 2011년부터 삶의 질 지수(BLI)를 개발해 발표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국 38개국 중 28위로 평가된다.

고용, 소득 등 경제적 측면 성과는 괜찮지만 공동체(37위), 환경(37위), 일과 삶의 균형(36위) 등 사회분야 지표는 순위가 낮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삶의 만족도(31위)도 낮은 수준이다.

윤 대사는 “과거 발전과정에서는 성장이 고용과 소득으로 연결되면서 중산층도 두터워졌지만 성장 속도가 점차 느려지면서 뒤처지는 계층이 많아졌다”며 “또 기술혁신과 개방의 큰 흐름에서 소외되는 계층이 늘어났지만 취약 부문과 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배려는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소득과 부의 분배 악화, 사회지도층과 가진 계층 반칙과 갑질, 기득권에 대한 불합리한 과보호 등 경제사회시스템 공정성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커지는 상황”이라며 “경제사회가 성숙하지 못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것도 행복도가 낮은 원인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윤 대사는 “학생에게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고 직장 구하려고 끝없는 경쟁을 해야 하고 장시간 근로가 당연시되고 여성에게 일과 가정을 독박 씌우는 상황에서 행복을 높이기는 어렵다”며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포괄적 노력이 전제되고 정부와 민간의 노력이 함께 수반된 연후에야 국민 행복도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종원 OECD 한국대사는
=▲1960년 ▲경남 밀양 ▲인창고 ▲서울대 경제학과 ▲UCLA 경제학 박사 ▲행정고시 27회 ▲IMF 이코노미스트 ▲재경부 종합정책과장 ▲재정부 경제정책국장 ▲IMF 상임이사 ▲현 OECD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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