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공용화는 정부의 공식문서를 중국어 및 영어로도 작성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각종 사회적인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영어교육의 중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대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중국대륙 표준어와 같으며, 한자표기 방식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만에서는 민난(閩南)어, 커자(客家)어, 원주민 언어가 사용되지만 공식 표준어는 중국대륙과 같다.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옮긴 이후로 푸퉁화(普通話)가 표준어가 됐다. 다만 대륙은 간체자를 사용하는 반면, 대만은 우리나라 한자와 같은 번체자를 사용하고 있다.
라이칭더(賴清德) 신임 행정원장(한국 국무총리 격)은 대만인들의 영어실력이 부족한 것은 ‘국가안보문제’와 직결된다며, 향후 영어를 ‘대만의 제2공용언어’로 추진시키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12일 국회 교육위원회는 대만의 ‘차이잉원(菜英文)’이 심히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영어로 번역된 음식점 메뉴판은 참담한 수준이라며 영어교육이 문제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따라 나왔다.
중국의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즉각 “영어공용화는 대만독립의 움직임”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대만의 보수성향 매체 중국시보(中國時報)·연합보(聯合報) 등은 사회적 비용 면에서 영어공용화를 현실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대만에서 영어 공용화 필요성을 둘러싼 논쟁은 이미 전부터 있었던 얘기다. 대만 경제가 장기간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한 돌파구 마련 과정에서 영어공용화 얘기가 나온 것이다.
라이칭더 행정원장은 타이난(台南) 시장 재임 시절에도 ‘영어 제2공용어’를 추진한 바 있다.
대만 사회에서 영어와 국가경쟁력과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비교되는 동아시아 국가는 싱가포르와 일본이다. 사람들이 인식하는 두 국가 간 차이의 핵심은 ‘전 국민’이 영어를 사용하느냐, 아니면 전체 국민 중 ‘일부 소수 언어 전문가’만 영어를 사용하느냐에 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비교적 높은 국가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는 국가다. ‘전 국민’이 비교적 수준 높은 영어를 구사하는 등 영어가 공용어 중 하나인 국가이기도 하다.
때문에 대만 내에서는 싱가포르의 국가경쟁력과 영어공용화가 일정 부분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평가가 있어 왔다.
그러나 여기에 반박하는 사람들은 일본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일본은 토익성적 기준으로 대만보다 영어성적이 낮지만, 여전히 국가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다.
일본의 경우 필요한 ‘소수’의 사람들만 영어를 집중적으로 배워 언어전문가로 활약하는데,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국가경쟁력이 높다는 것이다.
위안샤오웨이(袁孝維) 대만대 교수는 대만과 싱가포르는 비교대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싱가포르는 대만과는 달리, 영국의 식민지배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영어사용 환경이 조성됐다”면서 “화교, 말레이시아인, 인도네시아인, 인도인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로서 전 국민이 소통을 위해 영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