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창 국정감사가 진행 중이다. 정부 각 부처를 비롯해 산하 공공기관에 대해 국회가 감사를 하고 있다. 해마다 하는 국감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낮잠 자는 장비’ 문제다. 올해 국감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보유장비 가운데 사놓고 사용하지 않거나 노후화된 장비 비용이 2000억원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이 돈으로 연봉 3000만원의 신규 인력을 고용하면 6666명을 채용할 수 있는 규모다.
올해 전체 R&D 정부예산이 19조4615억원이었다. 2018년도는 이보다 1723억원 많은 19조6338억원으로 편성됐다. 공교롭게도 이 같은 규모는 내년도 일자리 창출 예산 19조2000억원보다 많다.
한 부처의 R&D 예산 낭비 규모가 이 정도일진대 모든 부처, 아니 올해 전체 R&D 정부예산 가운데 불필요하게 사용된 예산을 조사해서 환산해보면 얼마나 될까. 이 돈으로 신규인력을 채용하면 얼마나 가능할까. 기업에서도 자체 편성한 R&D 예산이 정부 R&D 예산같이 낭비되는 경우가 많을까. 기업은 R&D 예산을 불가피하게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당장은 필요치 않지만 향후에 필요하니 미리 장비를 구입해 놓을까. 그래서 연구실 한편이나 별도의 공간에 오랜 기간 방치해 놓다가 결국 노후장비로 버리게 될까.
기업의 경우, 이런 일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과대 책정하지도 않지만 불가피하게 남았다고 긴급하지도 않은 분야에 지출하지 않는다. 작은 규모의 돈이라도 쓸데없는 곳에 지출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왜 그럴까.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책임자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이다. 행여 예산 편성과 집행이 문제가 생기면 기업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더 민감하고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된다.
그렇다고 R&D 예산을 잘못 사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정부의 R&D 예산은 창업과 기업성장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기업들이 모두 공감하고 인정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정부의 R&D 예산이 보다 많이 지원되길 바라고 있다.
단지 적재적소에 투입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대로 검증돼야 한다. 물론 관리·감독기관에서 나름대로 감사는 한다. 감사기준이 있으니 그에 맞춰 감사한다. 그런데도 불필요하게 사용되고 줄줄 새는 R&D 예산은 수도 없이 많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고 있다. 한명, 한명의 청년을 채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무의식중에 사라져 버리는 셈이다.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으면 계속 말해도 괜찮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다시 말하면, 정부 총괄부처 산하에 R&D 전담기구를 설치해 R&D 관행을 모두 혁신해야 한다. 소위 ‘R&D 혁신위원회’를 만들어서 R&D 관련 모든 내용을 꼼꼼하게 검증해 바꾸길 바란다. 해당 기관마다 나름대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심사하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허점이 많다. 무엇보다 ‘관행’이 누구를 위한 관행인지 따져볼 일이다.
단순한 논리로 말하면, 일자리 창출을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일자리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일자리예산과 같은 규모의 R&D 예산을 총괄하는 기구는 없지 않은가. 일자리 창출과 R&D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에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