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네소타주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으면 처벌 받습니다'라고 했을 때보다 '주민의 90% 이상이 이미 납세 의무를 이행했습니다'라고 안내문을 보냈을 때 자진 납세 효과가 컸다. '남들도 다 세금을 냈다'는 식으로 불안감을 자극해 납세자 집단에 묶이고 싶은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억지로 금지하기보다는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낸다는 넛지(nudge) 이론이다.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이 이론으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가계부채 문제가 최대 이슈다. 정부의 규제 강도가 어느 정도일지 벌써부터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일러 교수의 이론대로라면 '대부분 채무자들이 성실히 빚을 갚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자극해 성실 채무자 집단에 속하고 싶은 심리를 이용하는 것도 시도해볼 만한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그동안 가계부채를 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너무 협박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당장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대출 중단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돈을 빌리겠다고 아우성이다.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대출이 급증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도 일단 여윳돈부터 확보하자는 의식이 강해졌다. 강력한 통제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넛지 이론의 반대인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출자 '전체'가 문제라는 정부의 인식 때문이다. 1400조원의 가계대출 가운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취약차주들이 빌린 80조원가량이다. 바꿔 말하면 1320조원에 해당하는 가계대출은 지금 당장 문제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부는 그동안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막겠다면서 모든 은행의 대출 문턱을 높였다. 그 결과 실제 돈이 필요한 서민들은 고금리를 취급하는 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렸다. 풍선효과가 발생한 것이다. 은행의 취약차주 대출 비중이 금액기준으로 3.7%에 불과한 반면 비은행권은 10%에 달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취약차주에 대한 정밀 규제와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전체 대출자'를 대상으로 일관된 잣대만 도입한 결과다.
이번 정부도 '핀셋 규제'라는 단어를 사용해 대출을 억제하겠다며 엄포를 놓고 있다. 풍선효과를 없애기 위해 제2금융권 대출까지 동일하게 규제키로 했다. 하지만 이번에 도입된 규제 역시 '핀셋'이 아닌 '전체'를 대상으로 한 성격이 짙다. 실수요자들은 금리가 높더라도 대출이 가능한 금융사를 찾을 것이고, 이는 시간이 지난 후 또다시 풍선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아직도 정확한 환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매번 동일한 오류를 범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정확한 실태를 아직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가계부채 통계를 보면 집계하는 기관 또는 적용하는 기준에 따라 수치가 제각각이다. 또 부채 총량만 알 수 있을 뿐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통계는 찾아보기 어렵다. 같은 주택담보대출이라고 해도 대출자마다 사용 목적이 다르다. 2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도 각각 소득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체 대출자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애꿎은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돈을 어디에서 빌렸는지, 그들의 부채 상환 능력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각 상황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은행을 비롯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은 앞으로도 해결 능력을 갖추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우리나라 가계부채 해결의 가장 큰 걸림돌이 이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정확한 실태 파악 후 강력한 규제보다는 부드러움으로 긍정을 이끌어 낸다는 넛지 이론을 이번 기회에 도입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