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군의문사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김훈 중위의 죽음에 대해 ‘진상 규명 불능’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초동수사만 제대로 했으면 김훈 중위 사망 원인 등을 밝혀낼 수 있었다는 지적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김훈 중위 순직 인정이 이뤄지기 19년 전인 1998년 2월 24일 정오 무렵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지하벙커에서 근무하던 김훈 중위(당시 25세,육사 52기)가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사람이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면 현장을 철저히 통제하고 보존해야 한다는 수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것.
김훈 중위가 타살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증거는 적지 않았다. 김훈 중위의 손목시계는 파손돼 있었고 엄격하게 관리되는 폭탄 크레이모어의 스위치 박스도 훼손돼 있었다. 하지만 이런 증거들은 무시됐고 제대로 보존도 안 됐다. 현장 촬영 사진도 제대로 남겨져 있지 않았다.
이렇게 초동수사가 부실했기 때문에 이후 수 차례 진행된 수사에서도 김훈 중위 사망 원인 등은 밝혀지지 않았고 군 당국은 자살이라는 결론만 고집했다.
김훈 중위 사건을 계기로 군 내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 등도 민간에서와 같이 수사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초동수사부터 민간의 경찰과 검찰이 군 당국과 합동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김훈 중위 순직 인정과 함께 국방부는 이 날 군 의문사의 신속 처리를 주도하고 군 의문사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국방부 차관 직속으로 ‘군 의문사 조사ㆍ제도개선 추진단’을 발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