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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9/06/20170906134656311362.jpg)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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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호레즘왕국]](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9/06/20170906135505941482.jpg)
[사진 = 호레즘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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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실크로드 대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9/06/20170906135553335574.jpg)
[사진 = 실크로드 대상]
주로 이슬람 상인들인 이들이 전해 주는 호레즘의 소식과 그 곳에서 가져온 물품에 관심을 가진 칭기스칸은 그 나라와 교역하기를 원했다. 그는 상인들을 통해서 호레즘 왕국의 군주인 무하마드 샤에게 서신을 보내 서로 도움이 되는 교역을 촉진하자고 요청했다. 샤는 호레즘의 왕을 그렇게 불렀다.
칭기스칸이 보낸 서신은 서로를 이롭게 하기 위해 교역을 자유롭게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는 해 뜨는 곳의 군주이고, 그대는 해지는 곳의 군주이다. 우리 서로 우호와 화목 그리고 평화의 조약을 맺고 교역을 자유롭게 하도록 만든다면 모두의 행복과 필요를 충족시켜 주게 될 것이다."
여기에 친밀감을 나타내는 외교적 관례로 ‘그대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구절이 덧붙었다. 이러한 서신을 보낼 당시 칭기스칸은 호레즘과 한판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칭기스칸이 호레즘에 대해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한 것이나 무하마드 샤의 뜻을 거스르지 말도록 아래 사람에게 지시한 것만 봐도 그렇다.
아직 금나라와의 전쟁이 완전 마무리되지 않았고 내부적인 정비에 시간이 더 필요했던 몽골로서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호레즘과 전쟁에 먼저 나서는 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보낸 서신의 표현은 무하마드 샤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 호레즘, 이제 막 닻을 올린 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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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호레즘왕국 주변도]](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9/06/20170906135725548082.jpg)
[사진 = 호레즘왕국 주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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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사마르칸드 전경]](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9/06/20170906135941934688.jpg)
[사진 = 사마르칸드 전경]
호레즘 제국은 당시 중앙아시아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투르크계 카라한 조( The Kara-Khanid Khanate)를 무너뜨리고 새로 일어선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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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사마르칸드 시장]](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9/06/20170906150816682220.jpg)
[사진 = 사마르칸드 시장]
▶ 신생국가의 치명적 약점 안은 호레즘
호레즘의 군주 무하마드는 초기 이 지역 전쟁에서의 승리로 기고만장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호레즘은 여러 취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초기전투에서의 승리로 넓은 지역을 장악하기는 했지만 나라를 안정시킬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조직은 모래성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투르크인과 타직크인 등 여러 종족으로 구성된 군대와 용병들 사이에도 여러 파벌로 갈등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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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자랄 웃딘 추정도]](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9/06/20170906150912883240.jpg)
[사진 = 자랄 웃딘 추정도]
또 이슬람 지역의 다른 국가와도 갈등이 심했다. 이런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무하마드는 내부 정비에 힘을 쏟기보다는 자신과 40만 명의 대군을 과신하며 과거 이 지역을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뒤를 이은 제 2의 알렉산더 대왕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는 돈키호테와 같은 인물이었다.
▶ 전쟁을 결심한 무하마드
이런 무하마드에게 건네진 칭기스칸의 편지는 그를 화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는 칭기스칸이 자신을 아들로 부른 부분에 대해 참을 수가 없었다. 무하마드는 칭기스칸이 어떤 사람인지, 또 북중국을 정복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등을 상인을 통해 알아 본 뒤 일단 사절단을 맞이했다. 그리고 마지못해 하는 표정으로 교역에 응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후 전개되는 수순을 보면 이때 무하마드는 이미 칭기스칸과의 전쟁을 결심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 오트라르 성주, 몽골 사절단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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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트라르 성터]](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9/06/20170906151101324430.jpg)
[사진 = 오트라르 성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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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트라르성 추정도(오트라르 박물관)]](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9/06/20170906151155824998.jpg)
[사진 = 오트라르성 추정도(오트라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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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트라르성 추정도(오트라르 박물관)]](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9/06/20170906151243644448.jpg)
[사진 = 오트라르성 추정도(오트라르 박물관)]
▶ 항의 사절단까지 살해
사절이나 대상단의 살해는 곧 전쟁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날축이 사전에 무하마드의 허락을 얻어서 취한 행동이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한 명을 살려서 보냈다는 것도 의도적으로 칭기스칸측의 도발을 유도한 측면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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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칭기스칸 좌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9/06/20170906151415667743.jpg)
[사진 = 칭기스칸 좌상]
▶ "선택은 전쟁밖에 없었다."
이슬람의 사가(史家)들은 이 부분을 안타까워하며 탄식했다. “이 무모한 행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슬람인들이 피를 흘리게 됐는가!” 무하마드의 의도는 분명해졌다. 선택은 전쟁밖에 없었다. 분노한 칭기스칸은 산 위에 올라가 텡그리신에게 사흘 낮 밤을 기도드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너희가 전쟁을 선택했으니 소원대로 해주겠다. 그 결과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하늘이시어! 고난을 일으킨 저들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호레즘과의 긴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