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39] 호레즘은 왜 스스로 무너졌나? ①

2017-09-0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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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호레즘에 교역 요청 서신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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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호레즘왕국]

[사진 = 호레즘왕국]

금나라를 정벌하고 초원으로 돌아온 칭기스칸은 몽골제국과 중앙아시아 사이에 있는 서요(西遼), 카라 키타이를 굴복시켰다. 그 과정에서 카라 키타이 서쪽에 겨울에도 얼지 않는 강이 있는 호레즘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소식을 자세히 전해 준 사람들은 실크로드 오가던 상인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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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실크로드 대상]

[사진 = 실크로드 대상]

실크로드(SilkRoad)란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도 호펜(Richthofen)이 ‘자이덴 슈트라센’(Seiden strassen), 즉 비단길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서 비롯됐다. 그 이름을 영어로 실크로드라고 불러서 동서를 잇는 교역로의 명칭으로 굳어진 것이지만 편의상 그 이름을 그대로 쓰도록 하겠다.

주로 이슬람 상인들인 이들이 전해 주는 호레즘의 소식과 그 곳에서 가져온 물품에 관심을 가진 칭기스칸은 그 나라와 교역하기를 원했다. 그는 상인들을 통해서 호레즘 왕국의 군주인 무하마드 샤에게 서신을 보내 서로 도움이 되는 교역을 촉진하자고 요청했다. 샤는 호레즘의 왕을 그렇게 불렀다.
▶ "나는 해뜨는 곳의 군주, 그대는 해지는 곳의 군주"
칭기스칸이 보낸 서신은 서로를 이롭게 하기 위해 교역을 자유롭게 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는 해 뜨는 곳의 군주이고, 그대는 해지는 곳의 군주이다. 우리 서로 우호와 화목 그리고 평화의 조약을 맺고 교역을 자유롭게 하도록 만든다면 모두의 행복과 필요를 충족시켜 주게 될 것이다."

여기에 친밀감을 나타내는 외교적 관례로 ‘그대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구절이 덧붙었다. 이러한 서신을 보낼 당시 칭기스칸은 호레즘과 한판 전쟁을 벌일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칭기스칸이 호레즘에 대해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말 것을 당부한 것이나 무하마드 샤의 뜻을 거스르지 말도록 아래 사람에게 지시한 것만 봐도 그렇다.

아직 금나라와의 전쟁이 완전 마무리되지 않았고 내부적인 정비에 시간이 더 필요했던 몽골로서는 강력한 군사력을 지닌 호레즘과 전쟁에 먼저 나서는 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다만 보낸 서신의 표현은 무하마드 샤의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한 내용이었다.

▶ 호레즘, 이제 막 닻을 올린 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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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호레즘왕국 주변도]

[사진 = 호레즘왕국 주변도]

당시 호레즘제국은 동(東)으로는 파미르고원에서 서(西)로는 자그로스산맥에 이르기까지, 북(北)으로는 아랄해에서부터 남(南)으로는 페르시아만까지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소유한 신생국가였다. 말하자면 지금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은 물론 아프가니스탄의 상당지역을 차지한 대국이었다. 중앙아시아의 이 지역은 고대로부터 호레즘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태양의 나라’라는 의미의 호레즘은 이름 그대로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태양이 작열 하는 땅이지만 인간의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번영을 구가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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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사마르칸드 전경]

[사진 = 사마르칸드 전경]

호레즘의 군주 무하마드는 이란화된 투르크족 가문에서 태어난 인물이었다.
호레즘 제국은 당시 중앙아시아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투르크계 카라한 조( The Kara-Khanid Khanate)를 무너뜨리고 새로 일어선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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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사마르칸드 시장]

[사진 = 사마르칸드 시장]

1,194년에 생겨난 호레즘 제국이 사마르칸드에 있던 카라한조의 마지막 군주 우쓰만을 죽이고 수도를 히바(Khiva) 근처의 우르겐치(Urgench)에서 사마르칸드(Samarkand)로 옮긴 것은 1212년의 일로, 아직은 정치적 단일국가로서의 생명이 짧은 발아단계에 있는 나라였다.

▶ 신생국가의 치명적 약점 안은 호레즘
호레즘의 군주 무하마드는 초기 이 지역 전쟁에서의 승리로 기고만장해 있었다. 그러나 당시 호레즘은 여러 취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우선 초기전투에서의 승리로 넓은 지역을 장악하기는 했지만 나라를 안정시킬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조직은 모래성이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투르크인과 타직크인 등 여러 종족으로 구성된 군대와 용병들 사이에도 여러 파벌로 갈등이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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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자랄 웃딘 추정도]

[사진 = 자랄 웃딘 추정도]

여기에 가족들도 증오심으로 갈려져 있었다. 특히 어머니 투르칸 카툰(Turkan Qatun)이 무하마드의 아들 자랄 웃딘(Jalal ad-Din)을 미워했다. 무하마드는 아들을 미워하는 어머니를 싫어해 가족 사이에 골이 깊었다.

또 이슬람 지역의 다른 국가와도 갈등이 심했다. 이런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무하마드는 내부 정비에 힘을 쏟기보다는 자신과 40만 명의 대군을 과신하며 과거 이 지역을 정복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뒤를 이은 제 2의 알렉산더 대왕이 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는 돈키호테와 같은 인물이었다.

▶ 전쟁을 결심한 무하마드
이런 무하마드에게 건네진 칭기스칸의 편지는 그를 화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는 칭기스칸이 자신을 아들로 부른 부분에 대해 참을 수가 없었다. 무하마드는 칭기스칸이 어떤 사람인지, 또 북중국을 정복했다는 것이 사실인지 등을 상인을 통해 알아 본 뒤 일단 사절단을 맞이했다. 그리고 마지못해 하는 표정으로 교역에 응한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이후 전개되는 수순을 보면 이때 무하마드는 이미 칭기스칸과의 전쟁을 결심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 오트라르 성주, 몽골 사절단 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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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트라르 성터]

[사진 = 오트라르 성터]

1218년, 호레즘의 동쪽 관문 오트라르(Otrar)성에 몽골의 사절단과 대상단이 도착했다. 당시 이 성의 총독은 이날축(Inalchuq)이란 인물로 그는 무하마드의 어머니 투르칸 카툰과는 사촌 간이었다. 이날축은 이들을 한 명만 남기고 모두 살해한 뒤 그들이 가지고 온 물건을 모두 빼앗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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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트라르성 추정도(오트라르 박물관)]

[사진 = 오트라르성 추정도(오트라르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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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오트라르성 추정도(오트라르 박물관)]

[사진 = 오트라르성 추정도(오트라르 박물관)]

그들이 정탐을 위해 칭기스칸이 보낸 첩자들이라는 것이 살해의 이유였다.

▶ 항의 사절단까지 살해
사절이나 대상단의 살해는 곧 전쟁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이날축이 사전에 무하마드의 허락을 얻어서 취한 행동이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한 명을 살려서 보냈다는 것도 의도적으로 칭기스칸측의 도발을 유도한 측면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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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칭기스칸 좌상]

[사진 = 칭기스칸 좌상]

엄청난 도발을 전해들은 칭기스칸은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바로 전쟁에 나서지 않고 내부적으로 전쟁에 대비해 나가면서 무하마드에게 다시 한 차례 항의 사절단을 보냈다. “이날축의 행위가 그대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발적인 행위였다면 이날축을 인도하면 유혈 사태를 막고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간에서 이들을 차단한 이날축은 한술 더 떠서 사절단 대부분을 살해하고 일부는 수염을 불태운 뒤 돌려보냈다.

▶ "선택은 전쟁밖에 없었다."
이슬람의 사가(史家)들은 이 부분을 안타까워하며 탄식했다. “이 무모한 행위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슬람인들이 피를 흘리게 됐는가!” 무하마드의 의도는 분명해졌다. 선택은 전쟁밖에 없었다. 분노한 칭기스칸은 산 위에 올라가 텡그리신에게 사흘 낮 밤을 기도드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너희가 전쟁을 선택했으니 소원대로 해주겠다. 그 결과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하늘이시어! 고난을 일으킨 저들에게 복수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호레즘과의 긴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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