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8/25/20170825102429533580.jpg)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동서고금을 통해 내부의 힘을 한곳으로 모으기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이 동원되는 경우는 숱하게 있어왔다.
16세기, 100여 년간에 걸친 전국시대 혼란을 수습하고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권을 장악하자마자 곧바로 임진왜란을 일으키게 된다.
![](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8/25/20170825133631999850.jpg)
[사진 = 몽골 초원의 석양]
▶ 내부단결+민족주의 노린 2차 대전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실의에 빠져 있었던 독일을 장악한 히틀러의 나치정권은 독재정권의 기반을 공고히 하고 독일인의 단합을 이끌어 내기 위해 민족주의를 앞세워 전쟁을 도모하게 된다.
함께 손잡고 나선 이 세 나라는 패전으로 전후(戰後)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지만 적어도 전쟁 기간 동안에는 내부의 힘을 한 곳으로 모으고 일사불란한 체제를 유지하려 했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 테러와의 전쟁이 불러온 미국의 일체감
전쟁을 통해 내부적 단결과 일체감을 엮어 내는 사례는 멀리 볼 것도 없이 미국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밀어붙인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9.11 참사라는 외부의 테러공격이 불러온 전쟁이기는 하지만 미국은 테러척결을 앞세운 대(對)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 미국인의 일체감을 일궈내는 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출범 첫해의 부시행정부는 미국인의 정서를 최대한 부추겨 테러응징을 다짐하며 전쟁을 선택했다. 그 결과 미국인들은 애국심이라는 이름 아래 똘똘 뭉쳤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앞세워 만들어 낸 미국인의 단결과 일체감은 놀라울 정도였다.
아프간에서 알카에다와 탈레반 정권에 대한 공습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동안 당시 부시대통령은 연일 테러 척결과 응징을 외치고 다녔다.
그리고 거의 전 미디어들이 그 뒤를 받쳐주면서 국민의 관심을 한 곳으로 몰아갔다.
![](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8/25/20170825133956160610.jpg)
[사진 = 나담 경기장의 몽골인들]
이 전쟁에서 승리했고 후세인도 처형됐지만 주장했던 대량살상 무기는 이라크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부시정권은 전쟁의 정당성이나 명분을 잃게 된 것이다.
미국인들은 사태를 냉정히 보기 시작했고 부시 인기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권은 민주당의 오바마 정권으로 넘어갔다.
결국 전쟁을 통한 일체감 조성이 성공하는 듯 했지만 결국 명분이 없는 전쟁의 결말은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 공동체의식이 값진 전리품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은 민족 개념이 거의 없고 국가 개념만 있는 나라다.
대몽골제국도 마찬가지였다.
출신과 용모 그리고 언어가 다른 여러 종족이 합쳐져 출발한 대몽골 제국도 지금의 미국과 마찬가지로 민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의미하는 명칭에 불과했다.
갓 태동한 대몽골 제국 안에는 얼마 전까지 적이었던 민족도 한 공동체 안에서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했다.
칭기스칸 이라는 인물 외에는 그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구심점이 없었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는 이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좋은 수단이 전쟁이었다.
칭기스칸이 처음부터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전쟁에 나서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8/25/20170825133128906284.jpg)
[사진 = 몽골군의 전투]
그리고 오랜 기간 단체생활을 하는 동안 그들이 어느 민족 출신이건 관계없이 몽골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의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을 것이다.
칭기스칸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을 통해 적에게서 빼앗은 어떤 전리품보다 몽골의 기치 아래 하나로 뭉쳐지는 이 공동체 의식이 가장 값진 전리품이었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전쟁을 이어가게 된 데는 이런 요인이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 항상 물자부족 겪는 유목민들
유목민이 전쟁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전리품을 얻는 데 있다.
오직 가축을 기르는 데 주력하며 옮겨 다녔던 유목민들은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해 의식주를 해결했다.
![](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8/25/20170825102541693222.jpg)
[사진 = 집단 게르촌(울란바토르 교외)]
또 의복은 가축의 가죽이나 야생동물의 가죽을 주로 이용해 지어 입었다.
그러다 보니 기본 생활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항상 물자가 부족했다.
그렇다고 목축에서 얻은 생산물을 이용해서 물물교환 형태의 거래로 다른 나라의 물자를 얻는 것도 용이치 않았다.
![](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8/25/20170825102817805123.jpg)
[사진 = 울란바토르 블랙마켓]
넓은 땅에 흩어져 사는 유목인들에게 상거래(商去來)는 거의 불가능했다. 전문적으로 나서서 물자를 중간에서 거래해주는 상인들도 그리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물자가 부족한 것은 지금의 몽골도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의 식료품과 생산자재는 외국에서 들여온다.
지금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과거에는 부족한 물품을 보충하기 위해 동원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전쟁이었다.
▶ 논공행상․ 사기 진작 위해서도 전리품 필요
특히 하나로 통합된 대몽골제국이라는 공동체가 탄생하면서 논공행상(論功行賞)을 위해서도 칭기스칸은 보다 많은 물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구성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도 많은 물자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할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부에서 물자를 조달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끊임없는 내부 전쟁으로 그 동안 초원은 피폐해지고 가축은 크게 줄어 든 상황이라 기존의 물자를 충당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자연히 전쟁과 약탈에 의해 물자를 보충하는 유목민들의 전통적인 방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8/25/20170825133442616212.jpg)
[사진 = 초원의 소금 호수(상긴 딜라이)]
더구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골고루 나눈다는 원칙이 이미 제시돼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랬을 지도 모른다.
▶ 영토보다 물자확보에 주력
칭기스칸의 정복 전쟁은 거의 전투에서 승리한 뒤 약탈을 통해 전리품을 챙겨 다시 돌아가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초기에는 전쟁의 목적이 영토를 장악해 다스리는 데 있지 않고 전리품을 챙기는 데 주안점이 두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한번 공격했던 지역을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공격하는 사례가 빈번했다는 데서도 그들이 전쟁에 나선 당초의 목표가 영토를 넓히는 정복전쟁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8/25/20170825133301783913.jpg)
[사진 = 몽골, 중국 국경 세관]
다만 세금을 내지 않을 경우에만 힘을 동원해 대가를 치르게 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더라도 칭기스칸의 전쟁은 물자를 확보하기 위한 경제 전쟁이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그래서 내부의 일체감을 엮어 내려는 정치적 이유와 함께 물자를 확보하려는 경제적 이유를 칭기스칸이 전쟁을 선택하게 된 으뜸가는 원인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런 이유로 전쟁을 선택했다 하더라도 칭기스칸과 그의 군대마저도 이어진 성공적인 결과에 반신반의(半信半疑)했는지도 모른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스스로 생각해도 기적적인 것이라고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칭기스칸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영원한 하늘, 즉 그들이 최상의 신으로 섬기던 텡그리의 선택을 받은 것이라며 초자연적인 힘의 덕택으로 돌린 것도 당시 그들의 정서를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 아니겠는가?
▶ 거듭된 승전이 만들어낸 새 인간상
칭기스칸의 정복전쟁은 사전에 치밀하게 짜여 진 계획에 따라 수행된 전쟁이 아니었다.
각 경우마다 나름대로 전쟁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각기 다른 이유가 있었다.
![](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8/25/20170825133823951235.jpg)
[사진 = 산에 오르는 몽골인들(실린복드)]
집사에서 라시드 웃딘이 언급한 것처럼 "적들을 산산조각 내 그들의 소유물을 빼앗고 그들의 아내와 딸을 끌어안아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는 것"이 전쟁에서 추구하는 그들의 목표였는지 모른다.
당한 쪽에서 약탈이라는 말로 비하한 이 초원의 법칙은 바로 정주 문명권에 파괴와 공포를 안겨주면서 결과적으로 연이은 승리를 낚아왔다.
거듭된 성공이 새로운 야망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17/08/25/20170825102507286947.jpg)
[사진 = 칭기스칸 동상(몽골 군사박물관)]
아마 세계 지배의 꿈은 처음부터 설정된 목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전쟁을 수행해 가면서 승리에 도취된 칭기스칸이 만들어 낸 수정된 꿈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