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한담(冬夏閑談)
벌거벗을 라(裸)로 읽은 현대 중국의 민낯
중국의 신조어 중엔 ‘벌거벗을 라(裸)’가 들어간 단어가 유독 많다. 뤄바오(裸報, luǒbào)라는 말이 있다. 대학생이 취업에 실패할까봐 무작정 대학원에 지원하는 것이다. 맨몸으로 아무 준비없이, 들어간다는 걸 부각시키기 위해 벌거벗을 라를 썼다. 보(報)는 보명(바오밍, 報名, bàomíng)이라고 해서 교육기관에 등록하는 걸 말한다.
뤄촹(裸創, luǒchuàng)은 가진 것 없는 사람들끼리 창업한다는 뜻이다. 맨주먹으로 일어서야 하는 중국인들의 고됨 속에 헝그리 정신마저 느껴진다.
뤄거우(裸購, 간체자로 裸购, luǒ gòu)는 헐값에 인터넷 쇼핑으로 물건을 사는 것이며 뤄자(裸價)는 ‘벌거벗은 가격’이니 최저가라는 의미다.
또 자녀와 처, 재산은 해외로 빼돌려놓고 본인만 중국에 남아 일하는 고위 공무원을 중국에서는 흔히 '뤄관(裸官)'이라 부른다.
뤄훈(裸婚, 나혼, luǒhūn)이란 단어는 중국의 현대상을 가장 잘 표현하는 신조어 중 하나다. 벌거벗은 결혼이라고 해서 턱시도나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고 하는 ‘누드 결혼식’이라 착각해선 안 된다.
뤄훈은 신혼집과 결혼식, 신혼여행, 결혼반지 없이 남녀가 법률상 혼인신고 절차만을 밟은 채 부부의 인연을 맺는 것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뤄훈스다이(裸婚時代, 나혼시대)’라는 드라마까지 나오기도 했다. 즉,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결혼하는 것이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중국과 한국의 결혼관 차이 때문이다.
한국은 보통 결혼식을 먼저 하고 혼인신고를 하지만(혼인신고도 1년 살아보고 한다는데~), 중국은 그 반대다. 중국은 결혼 등록 부서에 가서 결혼증명서를 먼저 받는다. 그리고 결혼식은 나중에 천천히 택일해서 올린다.
이런 뤄훈의 가장 큰 배경은 중국의 살인적인 집값이다. 중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결혼할 때 남자가 집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부동산 가격이 워낙 비싸다 보니 신혼집 마련이 쉽지 않다.
한국도 이웃나라 중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 결혼을 하기도 어렵고, 결혼을 해도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에듀푸어가 되어가는 현실이 꼭 닮았다.
결혼할 때 신랑 집이 신부 집에 주는 예물 ‘차이리(彩禮)’도 15만 위안(2500만원) 가량이 들어간다. 상하이만 해도 근로자 평균 연봉은 연 1400만원 수준인데 상하이 평균 집값은 연평균 소득의 50배나 된다. 평균 월급이 한 달에 120만원~150만원 꼴인 처지에서는 예물비도 부동산비도 살인적이다. 상황이 이러니 집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2020년까지 중국의 노총각은 3000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뤄훈 조차 하지 못하는 이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뤄훈이 모든 조건을 갖춰놓고 이리저리 재면서 하는 결혼이 아닌, 일단 두 사람이 결혼으로 뛰어들어 부딪혀보자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국의 경쟁력도 어쩌면 이 ‘벌거벗음’에서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