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석규의 대몽골 시간여행-25] 너흐르는 어떤 충신인가?

2017-08-2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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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 성공을 담보하는 인간관계-안다, 너흐르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서로 마음이 통하고 믿음이 가는 많은 친구들과 동료들을 얻게 된다.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형제 못지않게 생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 끈끈한 관계, 그러한 인간관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숱하게 형성돼 왔다.

전환점을 기록한 역사적 대사건의 이면에는 그것을 주도한 인물의 성공적인 인간관계가 크게 작용한 사례가 특히 많았다.
반면에 인간관계를 성공적으로 만들지 못한 인물은 역사의 패배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사진 = 너흐르 목상(칭기스칸 궁전)]

같은 혈족은 아니지만 형제나 다름없는 이러한 인간관계를 몽골에서는 '안다' 또는 '너흐르'라고 부른다. 둘 다 친구, 동무, 동지 등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안다'와 '너흐르'는 개념상의 다소 차이가 있다.
 

[사진 = 초원의 유목민들]

친구처럼 동등한 입장에서 이루어진 관계의 경우에는 '안다'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너흐르'는 독립성과 동등성을 가지기보다는 군신 관계 또는 주종 관계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창업의 역사에서 자주 등장
알타이 계통의 종족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 같은 유형의 인간관계는 일정한 절차를 통해 그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경우가 많다. 피를 섞어 술잔에 담아 나눠 마시면서 관계를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 기념물을 교환하면서 결의를 다지는 경우도 있다.

또 옷을 서로 교환하는 경우도 있는 데 중국에서 의형제를 포가(袍哥)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면 뜻을 같이해 무언가 이루려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게 마련이다.
 

[사진 = 나담 경기장의 아이들]

이럴 때 이러한 인간관계의 형성이 자연히 잦아진다. 그러한 관계는 뜻을 펴는 데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와 관우 그리고 장비의 도원결의도 그 대표적인 예 가운데 하나다.
몽골에서는 이 같은 관계를 안다 또는 너흐르의 관계라 부르고 있다.

▶ 통일국가 형성의 바탕이 된 인간관계

[사진 = 이시참치 교수(몽골원로 역사학자)]

12세기 혼란한 몽골 초원에서도 그러한 풍습이 크게 유행했다. 몽골의 원로 역사학자 이시참치교수는 "그러한 풍습은 몽골과 중앙아시아 지역에 널리 퍼져 있었고 특히 칸(왕)이 되거나 성공하기 위해서는 좋은 안다나 너흐르를 많이 가지고 있어야 했다.

칭기스칸의 아버지 예수게이도 안다와 너흐르가 많았고 칭기스칸도 그랬다. 바로 이것이 몽골이 통일국가를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테무진이 젊은 시절 맺은 인간관계는 안다와 너흐르의 개념이 섞여있지만 친구, 동지라는 의미가 강하고 어떠한 계급적인 의미도 담겨 있지 않다.
 

[사진 = 집사(몽골 역사서)]

그러나 나중에는 그 성격이 바뀌어 강한 너흐르의 개념으로 거대한 집단을 이루게 된다. 몽골비사에는 이 너흐르라는 말이 무려 79번이나 등장할 정도로 칭기스칸의 인간관계의 바탕이 되고 있다.

▶ 유일한 敵이었던 안다 '자모카'
테무진이 안다 관계를 맺었으나 유일하게 적이 되는 인물은 그의 경쟁자 자모카였다. 어릴 적 만나 안다 관계를 맺었던 자모카는 몽골족의 일족인 자란다족 출신이었다.
그도 어릴 때부터 테무진 못지않은 험난한 길을 걸어 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냉혹한 초원에서 살아남는 법을 누구보다 일찍 터득했을 것이다.

자모카가 죽기 전에 "나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동생들도 없었으며 처는 수다쟁이였고 믿을 만한 종사들도 없었다."고 독백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어려운 삶을 살아 왔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는 메르키드 공격을 받아 전 재산을 강탈당하고 30여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초원을 헤매기도 했다.

그 후 그는 메르키드족의 군주인 토크토아 베키의 아래로 들어가 신임을 얻었다. 그런 다음 경비가 소홀한 틈을 타 군주의 게르에 들어가 그를 위협한 뒤 자신의 부족민과 재산을 되찾아 자유의 몸이 된 것으로 라시드 웃딘이 쓴 일한국의 몽골 역사서 집사(集史)는 기록하고 있다.

집사는 또 자모카의 성격과 관련해 "아주 총명하고 교활했으며 칭기스칸에 대해서 항상 음모를 꾸미고 배반과 기만을 일삼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다분히 칭기스칸을 돋보이게 하고 자모카를 의도적으로 비하시킨 일면이 있는 기록으로 보여 진다.

실제 상황을 보면, 테무진이 자신 보다 먼저 초원의 강자가 된 자모카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것을 바탕으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자모카는 테무진의 반대편에 서서 여러 형태의 합종연횡을 통해 테무진과 대적했다. 하지만 결국 모두 실패하고 만다.
 

[사진 = 자모카 도주로]

나이만이 마지막으로 무너지고 몽골 초원이 테무진에 의해 하나로 통일되자 그는 도주 길에 오른다. 그리고 지금 러시아 영토인 탄루산맥에서 자신의 부하들에게 붙잡혀 테무진에게 넘겨졌다.

테무진은 자모카를 잡아온 그의 부하들에게 자신의 칸에게 손을 댄 사람을 어떻게 살려두겠느냐며 현장에서 그들의 목을 베고 그들의 자손들까지 모두 처형하라고 명령했다.
자모카 부하들은 자신들만 살려다 죽은 꾀를 낸 꼴이 됐다. 테무진은 자모카에게 이제는 손을 잡고 함께 가자고 권했다. 그러나 자모카는 자신의 운명이 끝났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형제는 주위의 나라를 평정했다. 천하가 이제 그대를 위해 준비돼 있는데 동무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오히려 그대 옷깃의 이, 그대 옷깃 아래 가시가 될 것이다. 형제가 허락해 나를 빨리 떠나게 하면 형제의 마음이 편안해질 것이다. 나를 죽일 때 피가 나오지 않게 죽이면 나의 유골이라도 높은 곳에서 그대를 가호해 주고 축복해 줄 것이다."

그가 사나이다운 기개와 냉철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테무진은 자모카의 소원대로 "그를 피가 나오지 않게 가게하고 그의 뼈를 보이게 버리지 말고 잘 거두라."고 명령했다. 테무진의 친구이자 숙적이었던 자모카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명석한 두뇌와 민첩한 판단력을 가지고 몽골 초원의 영웅으로 떠오를 만한 자질을 가졌던 자모카, 그러나 하늘에 태양이 둘이 있을 수 없고 초원의 칸이 두 명 있을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여기에도 적용돼 영원한 조연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자모카의 죽음은 초원통일의 마침표나 마찬가지였다.

▶ 4준마(四駿馬)와 4구(四狗)

[사진 = 몽골군의 편제 - 천호제]

1206년 몽골 초원을 통일한 뒤 테무진은 오논 강변에서 칸의 칭호를 받았다.
칸이 된 그는 95개 천호 조직의 장을 임명하며 공이 많은 너흐르들에게 은전을 베풀었다.
 

[칭기스칸 궁전(울란바토르 교외)]

원조(元朝)에서는 이때를 태조(太祖) 원년으로 삼고 있다.
이 때 칭기스칸은 충성스런 너흐르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며 그들의 공을 치하했다. 특히 칭기스칸은 4명의 준마와 4명의 충견들의 이름을 지칭하며 그들의 공을 높게 평가했다.

몽골비사는 칭기스칸이 이때
"쿠빌라이, 젤메, 제베, 수베타이 그대들 네 마리의 개들을 의도한 곳으로 향하게 하면 '가라' 했을 때 돌이라도 부수고 '뎜벼라!' 했을 때 바위라도 치며 흰 돌을 깨며 깊은 물을 끊고 있었다. 보르추, 무칼리, 보로굴, 칠라운 바아투르 이들 네 준마들이 내 곁에 있으면, 전쟁의 날이 됐을 때 내 모든 마음이 편한 것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적고 있다.

사준사구(四駿四狗)라 불리는 이들은 네 마리의 충성스런 준마와 충견을 뜻하며, 칭기스칸을 도와 몽골 제국을 건국한 8인의 건국공신을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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